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를 했었다. 시험 감독을 들어갔을 때 한 학생이 손을 들어 무슨 문제가 있나 가보았다. 시험 문제 지문 중 ‘부합하는’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게 아닌가. 갈수록 평균 학력이 저하된다는 기사를 봤던 것이 생각났다. 수업 시간 전에 스마트폰을 내게 하는데 내지 않는 학생이 상당하며, 수업 시간에 몰래 쓰다가 들켜서 압수당하면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을 꽤 보았다.
나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메신저와 블로그 정도만 하는데, 블로그도 내가 한일에 대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할 뿐이다. 페이스북에 보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려고 포장한 사진만 올려댔고, ‘좋아요’ 버튼은 개개인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심하게 자극했다. 퍼거슨 감독이 실제로 말했는지 모르지만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에 동의했고, SNS를 하면 이상하게 뭔가 위화감 같은 게 느껴져 대부분 탈퇴하고 삭제했다.
며칠 전에 스마트폰으로 스캔 기능을 제공하는 A사의 앱이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B사의 앱을 설치했다. 설치해서 사용하려 하니 꼭 회원 가입을 해야 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통한 간편가입 기능 지원했지만 B사에 건네주는 개인 정보가 과도하다고 느껴져 삭제해버렸다. 점점 기업들이 요구하는 개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많아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보여주는 약관은 점점 복잡해지고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기계적으로 수락할 것이다.
‘돈 비 이블’이란 책을 읽었다. 저자는 언론인 출신이다. 자신의 자녀가 아이폰으로 인앱 결제 게임에서 엄청난 돈을 쓰고, 게임에 중독되어 있는 걸 알고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빅 테크 기업에 대한 관심은 그전부터 있었던 거 같다)
'Don't be evil'은 구글 설립 초창기 모토로 '사악해지지 마라'라는 뜻이다. 사악한 행동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현재 구글은 그렇지 못하다. 구글뿐만이 아니다 'FAANG'이라 불리는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감시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현재 빅테크 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본주의 시장을 설명하는 용어로 인간의 경험을 숨겨진 상업 관행을 위한 원자재로 여기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뜻한다. 재화 및 서비스 생산을 행동수정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아키텍처 하위에 두는 기생적인 경제논리이다.
[무법화와 감시자본주의]
언제부터인가 취업난이 심해졌다. 기술이 발전하고 IT기업들이 새로 생겨나는데 취업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매달 습관처럼 말한다. "모든 것이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안 오른다."
‘네트워크 효과’는 선점에서 독과점으로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을 끌어올리며, 그 힘을 이용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 후 가공할 만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거대한 메타 네트워크를 만든다. 빅테크는 그저 한 분야에서 선두 주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위한 플랫폼 즉 인생의 운영체제가 되고 싶어 한다.
빅테크의 성장은 곧 비즈니스 역동성과 기업가 정신의 하락이며 인재 가로채기, 지적 재산 뺏기 등 많은 문제를 유발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대기업이 너무 커지면서 비슷한 사례가 기사에 자주 실리는 것을 보았다. 애플과 아마존이 누리는 유형의 권력 집중 현상이 M&A 체결 건수가 기록적으로 치솟는 핵심 이유며 이로 인해 스타트업이 생겨나지 않고,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않고, 수요가 줄어들고, 양분화된 경제를 만든다.
데이터의 가치는 석유와 같다. 그러나 데이터는 일자리 성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빅테크는 막대한 이윤과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자사주를 매입하였고 주주들의 부만 불렸다. 시총 대비 일자리의 감소와 파괴하였으며, 단순한 하위직 군 지루한 일만 자동화되는 게 아니라 모든 직업의 자동화, 법률과 금융 등 지식 업무가 빠르게 자동화될 것이다. 과거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노동력이자 제품 수요를 만들어내는 고객이었지만, 데이터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디지털 시대의 공간 원자재이며 고객은 데이터 분서 자료와 감시 데이터를 구매하는 광고주와 기업들이다. 인간은 제품에 불과하다.
맥킨지에서부터 OECD에 이르는 다양한 조직들이 향후 10~20년 사이에 여러 고용주를 위해 일하는 프리랜서, 독립 계약자, 파트타임 근로자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잇달아 내놓았다는 사실을 매우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35%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임금 성장률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 일자리를 파괴하는 기술을 꼽는다. 1998년에는 기업 투자의 48.3%가 공장, 기계, 그 외 물리적 인프라에 투자되고 약 30%가 정보처리장치, 다양한 지적재산 기술에 투자되었으나, 2018년에는 각각 28%, 52%로 변하였다.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만, 요즘 기술(데이터 장치, 소프트웨어 등)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진행된 연구 결과를 통해 다수의 경영자들이 앞으로는 디지털 파괴로 인해 전체 근로자 중 2/3을 재훈련하거나 해고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돈이 우선, 도덕성의 결여]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 제 기능하려면 투명성, 동등한 정보 접근성, 공통된 도덕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디지털시대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
빅테크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이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에 너무 중독된 탓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빅테크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 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다. 이는 이 책뿐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저)'를 읽어보면 좋다.
실리콘 밸리의 사람들은 독단적이며 우선하고 본다. 나중에 사람들이 새로운 것이 기존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부정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구글은 스트릿 뷰 제작 당시에 자사의 광고 판매량 증진을 위해 앞마당 사진을 찍고 해당 사진의 주소를 제공해도 되는지 결코 물어보지 않았다.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낫다’라는 격언을 철저히 따른다. 물론 실제로는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빅테크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럼에도 온라인에 널리 퍼진 편파적인 발언, 의도가 담긴 정치광고, 가짜 뉴스 등에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은 검열이 가능하지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라인 무료 콘텐츠 증가는 사용자를 트래픽을 증가시키고 이는 구글의 정밀한 타깃팅 광고를 가능하게 하여 수입을 증가시킨다. 온라인에 제공되는 무료 콘텐츠는 콘텐츠 제작자보다 대개 플랫폼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된다.
피파 모바일은 심리학자 스키너의 ‘간헐적 행동 보상’을 바탕으로 가장 효과적인 인간의 행동 변화 연구의 결과물인 ‘캡톨로지’(스탠포드 설득기술연구소)를 이용한다. 에픽 사의 포트나이트는 무려 200개에 달하는 설득 기술을 적용하였으며 가상 상품 판매로 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포스트와 상호작용, 사진을 실시간 감시하는 기술을 활용해 10대들이 “불안해하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고, 스트레스 받고,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을 추적할 수 있으며,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취약한 순간”을 공략하는 초정밀 타깃팅 광고를 진행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개개인에게 미칠 파급효과는 거의 고려치 않고 끝없이 고의로 우리의 관심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가장 초점을 두는 부분은 소비자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다. 왜 무료로 제공하고, 쿠폰을 주면서 ‘앱 푸시’를 허용하라고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모두가 집중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1990년대 ADHD 진단율 3% → 현재 11%)
우리는 빅테크를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빅테크가 어디로 가든지 이상하게도 빅테크를 환영한다. 외판원의 의심을 품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눈부신 신기술이 등장하면 여느 때와 달리 방어태세를 모두 풀어버리는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다.
우리가 제공하는 데이터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마존이 제시하는 판매 가격이 그다지 저렴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018년에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과 신용 평가 기관 같은 대형 데이터 수집 기관들이 사용자의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서 얻는 가치를 보수적으로 추산한 금액이 무려 760억 달러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결론은 소비자가 서비스를 통해서 얻는 가치보다 개인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잃는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공짜’는 없다.
[매수된 사람들]
2012년 당시 연방거래 위원회는 구글을 해체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러나 각종 로비와 구글에 친 성향인 사람들이 위원으로 대거 참여하면서 실패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구글은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한 수많은 학계 연구에 돈을 댔다. 규제 움직임을 막기 위해 5,000달러~40만 달러씩 수백 건의 연구 보고서에 자금을 냈다. 독점, 사생활, 사이버 보안 등에 관한 공개 토론은 빅테크 및 대기업에 의해 전적으로 좌지우지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있는 거대 기업이 많은 연구에 자금을 대고 있다. 인간의 심리상 상대가 대가 없이 제공하는 호의에도 빚을 졌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거대 기업의 자본을 받은 전문가들이 그 기업에 비판적일 수 없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얘기하는 '신 친일파'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치 관여, 사회 분열, 감시국가]
예전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중에 있던 일이다. 서서 가야 해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다가 앞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가 페이스 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내용이 심각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고 반대에 있는 세력을 빨갱이로 모는 그런 기사만 줄기차게 읽고 있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 정보와 개인화된 ‘은밀한 광고’를 전송해 악의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공격하는 행위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 세상을 좀 더 양극화 시키고 있다.
2016년 대선전, 정치 세력들은 온라인 광고와 마케팅에 무려 14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페이스북, 구글이 수혜자였다. 이들은 트럼프 진영에 직원을 파견했다. 사실상 정치꾼들이 잠재적인 유권자들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플랫폼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공짜 인력을 제공한 셈이다. 또한 러시아 세력에 의해 페이스북이 활용되어 선거에 개입된 점이 드러났고, 저커버그는 의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사전 여론 조사와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 차후 보고서에 러시아 세력이 플랫폼 기술을 이용해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적어도 가짜 정보가 지속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른다는 중대한 의문을 포함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모델은 가장 많은 클릭을 받는 콘텐츠가 무엇이건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면 개의치 않았다.(선거 개입, 사용자 데이터 약관 위반 사례, 아동 사용자를 조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 기법 사용, 미얀마 군사정권 같은 독재 정권들이 대학살을 위해 페이스북 플랫폼을 활용한 사례)
우리나라도 2017 대선에 선거개입에 관련된 소위 '드루킹 사태'가 있었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플랫폼과 페이스북에는 가짜 뉴스가 난무했다. 한 대선 후보는 국회의원 때 가장 민생에 도움 되는 입법도 많이 하고, 통과시켰으나 그의 잘한 점이나 업적은 가려진 채 가짜 뉴스에 처절하게 짓밟혔다.
페이스북 광고 도구는 흑인 민권운동 ‘Black Lives Matter’에 관심을 표현한 사람들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런 데이터는 Geofeedia라는 제3자 데이터 감시 판매 기업을 통해 경찰의 각 부서로 판매된다. 이미 미국은 감시국가(surveillance state)가 되었다.
중국은 이런 빅테크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감시국가(마오쩌둥 시대보다 더한) 체재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은 개인의 정보보호 가치가 무의미하며, 각종 인공지능 기술과 센서 카메라 등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적극적으로 개인 데이터를 만들어 기업과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
[투자와 위기]
데이터가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거래하는 기업들은 재무제표에 데이터의 가치를 명확하게 공시할 필요가 없다. 현재 재무제표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영업권’이라는 항목에 슬쩍 끼워져 있으며, 아예 데이터의 가치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투자자들이 기술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바로 그 대상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서 기술기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다.
일부 고수익 채권은 현재 불안한 모양새를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을 미뤄 볼 때, 또다시 초대형 위기가 찾아온다면 은행이 아니라 기업 부문이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가파른 부채 수준 증가는 위기를 예측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난 10년 기업 채권 시장은 70% 성장하였으며, 2018년에는 그 규모가 10조 1,700억 달러에 달한다. 유명하지 않은 기업조차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은 오랜 저금리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좀비기업이 생겨났다고 경고했다.
[돈 비 이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규칙]
먼저 업계의 자체적인 자율 규제는 거의 효과가 없다.(20세기 철도시장, 1990년대 에너지 시장, 2007년 금융산업).
이제는 플랫폼 기업들이 다른 부류의 미디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콘텐츠를 현금화하는 광고 회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규제 변화는 플랫폼과 상거래를 분리해 공정하고 경쟁력 있는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빅테크의 위력은 19세기 철도 거물들이 누렸던 힘과 너무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복지만 생각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복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
IT기업의 생태계와 빅테크 기업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투자를 하면서 종종 사악한 기업(살상 무기를 만들거나 담배 같은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 등)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책의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과연 빅테크 기업들은 사악한 기업이 아니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기업에 투자해서 그 기업이 사악하게 번 돈을 같이 나누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5G 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정보는 더욱더 수집될 것이다. 빅테크 기업 중 검색 서비스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오픈한 구글에 대한 친밀도는 높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모든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 창출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저자의 말처럼 무료로 제공되는 편리한 기술에 중독되어 기술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고, 거기서 창출되는 이익을 소수에 기업이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