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송의 역사 실험은 점점 현실에서 환상으로,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직접적인 연구에서 응용적인 연구로 이동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글쓰기의 자기만족 정신에 충실하게 변모를 모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역사 쓰기에 소설적 요소를 도입해서 역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한편, 소설의 진실성을 같이 의심하고 음미해보는 그런 지적 모험에 도취돼 있는 듯하다.
이 책은 강원도 고성군에서 고대 문자가 적힌 점토판을 발견한 대학 때 스승이 어느날 갑자기 죽으면서 그에게 유품으로 남긴 하나의 박스가 전달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독특한 점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것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의 스승도 실존 인물이고. 등장하는 고대 점토판 둘러싼 사람들 또한 실존인물이라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때로는 소설이란 것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픽션의 형식을 빌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은 뭔가 흥미진진한 점토판을 둘러싼 갈등과 추격전, 음모, 이런 것들이 펼쳐질 것 같지만, 스토리라인이 그렇게 박진감 넘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반도의 실재했을지도 모를 고대 민족의 완성된 신화체계와 언어, 그리고 역사를 나름대로 재현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한 역사의 의미, 역사가의 욕망, 같은 메타적인 주제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원론적인 주장을 펼칠 경우, 그 원론적인 것에 갚할 만큼의 치열하고 깊이 있는 고민이 함께 따라줘야 하는데 질문은 무거운데 비해 대답은 소략하다. 그래서 그가 이 책에서 추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결론적으로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