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슬픔’이나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너무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있으면 답답해했다. 왕따는 아니지만, 가끔 혼자서 왕따를 자처하는 고립감 같은 것.
자처하는 고립감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깊어지게 되면 스스로에게 정말로 외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대학 때 한번은 몸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친구들이 처음에는 수업도 안 들어오고 하니 신경을 많이 써줬는데, 그게 반복되니까 무덤덤해지고 어느새 나를 자주 찾지도 않게 되었다. 그럴 때 인간은 마음속에서 ‘우정이고 뭐고 없어’ 하면서 혼자서 외로워하고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 마음을 조금만 고쳐 먹으면 그런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가족과의 따뜻한 정이 편치 않았던 나, 직장에서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하거나 정을 주고받는 것이 내심 불편했던 나, 나는 이런 내가 약간은 부적응자가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 그건 그냥 나만의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 심리 치유의 가장 기본은 ‘타고난 기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게 이 책의 첫 번째 중요한 메시지인데, 그건 내 탓도 부모 탓도 아닌 그냥 인정해야 할 객관적인 무엇이다.
이걸 잘 파악하고 나면, 어릴 때 내 정신이나 사고에 영향을 주었던 배경들을 짚어보게 된다. 가족과의 관계가 가장 핵심일 텐데, 사실 나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거의 없었다. 평범한 가족으로, 부모님이 나에게 상처나 억압을 준 적이 없고, 많은 형제들과 별 탈 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울기질이 있었다.(바로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또한 항상 영혼의 목마름이 있었다. 나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그 무엇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나 같은 사람은 무신론자는 절대 될 수 없었다. 자신을 폄하하진 않지만, 그래도 항상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더 큰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다. 즉 특정 신이나 종교를 믿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삶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더 큰 존재의 힘이라고 느꼈다.
이 책은 그런 영혼의 부분을 과도하지 않게, 그러나 필수 요소로서 짚어준다는 점에서 많은 일깨움을 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오래된 꿈을 생각나게 했다. 많은 사람이 장래의 직업을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어떤 직업들을 한번 꿈꾸곤 한다. 나또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일을 하고 있지만, 십대 때만 해도 다른 사람을 돌보는 직업을 가져야지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은 ‘돌봄’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아직은 저버리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할 꿈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