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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님의 서재
  • 나를 균열내기
  • 신유진
  • 15,300원 (10%850)
  • 2026-06-15
  • : 11,755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이 책에 빠져들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오래 마음에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도, 그것을 내 안에 남기는 일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동시에 샘솟게 했다.

『나를 균열 내기』라는 제목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내가 아닌, 본연의 나를 마주하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졌다. 책 속에서 저자는 여러 문학가를 만나고, 그들의 작품과 삶을 탐색한다. 그러나 결국 그 여정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문학가들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막’이라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자신에게도 매끄러워 보이는 막이 있다고 말한다. 무던하고 모난 곳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의 울퉁불퉁한 삶을 감추기 위해 뒤집어쓴 막. 뾰족한 자신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모서리를 접고 또 접다 보니, 오래 접힌 곳은 잘려 나간 것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는 고백이 깊이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나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매끄럽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자신을 다듬고 감추며 살아왔다. 이 책에서의 균열 앞에서도 나는 나의 매끄러운 막을 걷어낼 용기가 없다. 아마 이 책을 덮고 나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게 진정 매끄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타인을 선망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욕망한다.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가. 접어둔 모서리를 펼치면 어떤 모습이 드러나겠느냐는 질문을 따라가기로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H에 관한 이야기였다. H는 두 개의 I와 그 사이를 잇는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그것을 내 안에 깊숙이 가둬둔 언어와 그것을 깨부수고 꺼내는 또 다른 언어, 그리고 그 둘을 격렬하게 이어주는 글쓰기로 해석한다. 이 책에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나 표현이 아니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내려가는 과정이며, 침묵 속에 묻어둔 언어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행위다.

“내려가 봐야 한다. 그래야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또 무엇을 부수고 올라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 성장이나 변화가 위로 올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먼저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 안의 심연과 마주하고,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감추어둔 것들을 발견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자신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균열 또한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나를 숨기고 접어두었던 시간마저도 나의 일부이며, 언젠가 그 모서리를 다시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었다.

또한 이 책은 문학이 정답을 주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일임을 보여준다. 설명되지 않는 죽음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문학은 대신 답해주지 않는다. 다만 너무 쉽게 잊히고 사라지지 않도록 질문을 던진다. 기억하지 않는 것은 사라지고, 없던 일처럼 살아가다 보면 정말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문장이 오래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문학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 역시 균열 내기의 한 과정일 것이다. 저마다의 비극과 심연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을 읽고도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움이 단순한 자극의 언어로 소비되는 시대에, 이 책은 오히려 자신 안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새로움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책이 균열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미 균열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저자가 문학가들의 언어를 통해 자신을 마주했듯, 독자 역시 책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책 속의 누군가가 저자의 H가 됐던 것처럼, 저자의 글은 또 다른 누군가의 H가 된다.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통해 연결된다. 결국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서로의 H가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H가 되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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