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저서 『야만시대의 귀환』은 우리가 그간 애써 외면해온 대한민국 사회와 국제 질서의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저자는 20세기 말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구조적 한계에 이르렀음을 지적하며, 그 공백 속에서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무한 경쟁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현상을 ‘야만의 귀환’으로 명명한다. 그의 비판은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 내부에 깊이 뿌리내린 승자독식의 사고방식과 타자에 대한 배타성까지 아프게 파고든다.
저자가 분석하는 국제 정세의 핵심에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쇠락이라는 진단이 자리한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러한 분석이 단순한 이론적 추론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박, 관세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하는 행보는 과거 ‘세계의 경찰’로 불리던 미국의 모습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박노자는 이러한 변화가 국제 사회 전반에 각자도생의 논리를 확산시키고, 국가 간 경쟁을 더욱 거칠게 만들 것이라 경고한다. 제국이 질서 유지의 비용을 동맹에 전가하기 시작할 때 그 질서가 흔들린다는 그의 진단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국제 뉴스들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이 ‘대안’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박노자는 미국 중심 질서의 쇠퇴를 전제로 북한과의 적극적 교류와 중국과의 연계를 한국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탈미국 중심적 사고의 가능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안보와 체제 선택이라는 현실 정치의 조건 속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현실 정치에서는 이상적 방향성뿐 아니라 그 실행이 안보와 외교환경에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미동맹은 대체 불가능한 요소와 동시에 재조정이 논의되는 측면을 함께 지닌 동맹이었다. 이는 강대국에 대한 일방적 종속이라기보다는, 전후 폐허 속에서 안보와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현실적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역할과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기존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부정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중국의 대외적 태도나 북한의 지속적인 핵 위협을 고려할 때, 이들을 곧바로 ‘대안적 파트너’로 상정하는 접근은 안보적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판단일 수 있다.
또한 체제의 문제 역시 단순한 이념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축적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는 가치와 운영 원리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닌, 다수 국가에서 심각한 한계를 드러냈던 체제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특정 이념에 대한 감정적 거부라기보다, 경험적 현실 인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야만시대의 귀환』이 던지는 문제의식 자체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박노자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내면적 야만성, 즉 학벌주의, 비정규직 차별, 약자에 대한 혐오와 같은 구조적 문제는 분명 성찰과 개선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 책은 개인과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경쟁의 논리를 다시 묻게 만들며, ‘민(民)’의 존재를 중심에 놓고 사회를 재사유하도록 이끈다.
결국 이 책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독자는 박노자의 해박한 지식과 시대 인식을 통해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그가 제시하는 이념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 선택이 과연 우리의 자유와 안보를 어떻게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자의 이론은 중요한 참고서가 될 수는 있지만, 시민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답안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만시대의 귀환』이 제기하는 문제를 성찰하되, 우리가 축적해온 역사적 경험과 안보 현실, 그리고 자유의 토대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선이야말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의존해온 질서와 가치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