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흔히 기대하는 블록버스터 SF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사건의 전개는 느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지루하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연출의 실패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거대 기업 SG의 계획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개인들의 시선은 끝까지 작고 무력하다. 그들이 무엇을 밝혀내든, 무엇을 저지하든, 비슷한 프로젝트는 다른 이름으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이 반복 가능성 앞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허무함이 이 소설이 독자에게 강요하는 감각이다. 세상을 구하는 서사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건조함은 소설이 출발부터 실패를 전제로 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고 있기에 가능하다.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그 혼란을 계산서로 바꾼다. 인류의 역사는 이 두 태도가 늘 함께 작동해 왔음을 증명해 왔다. 《사막의 바다》는 2056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 그 오래된 공식을 다시 한 번 적용한다. 참패로 끝난 ‘사막의 숲’ 프로젝트가 폐허로 남았음에도, 인류는 멈추지 않는다. 반성은 비용이 되지만, 다음 계획은 투자 설명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타림분지 지하의 짠물 호수를 파헤치는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자본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 온 변명에 불과하다.
작품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192페이지에 있었다.
“사실이 아닌 말만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아요.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것도 거짓말이죠.”
이 문장은 정보 조작의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문제는 거짓말이 아니라, 선택된 사실이다. 팩트라는 이름으로 잘려 나간 맥락과 침묵 속에서 대중은 손쉽게 방향을 잃는다. 우리는 흔히 선동이 쉬운 이유를 대중의 무지에서 찾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불편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진실의 복잡함을 감당하기보다,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에 기대고 싶어 하는 태만. 멀리 떨어진 비극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정리해 버리는 방관. 그 태도야말로 이 거대한 사기극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미 바다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고, 인류는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빠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조급함은 결국 ‘사막의 바다’라는 또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소설은 끝까지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한다. 이 싸움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침묵보다 나은 선택이 되는 순간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희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엇을 외면했는지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