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서평단으로 무상 제공받았습니다"
🐧 바실리 그로스만과 그의 소설은 현대 러시아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게다가 작가인 그로스만은 2차대전 중에 종군기자로 활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런 배경들은 굉장히 흥미로웠고, 3권짜리 해외소설이라는 방대한 분량과 무려 러시아 문학이라는 쉽지 않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읽기 시작하였다.
🐧 수용소, 공포, 불안, 총알, 죽음, 괴성. 전시중이라면 너무나 흔해빠진 단어들이라 그런걸까. 아무렇지 않게 놓여지고, 배치된다. 책은 그렇게 소련과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최전방에 전사자들이 매장되었다. 이들은 그 영원한 잠의 첫날을, 그들의 동지들이 편지를 쓰고 면도를 하고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벙커와 은신처 바로 곁에서 보냈다. _1권 43p
🐧 주요 공간은 세 곳으로 나뉜다. 빅토르와 그의 아내 류드밀라가 있는 곳, 스탈린그라드 전쟁, 독일 수용소의 삶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 쉴새없이 쏟아지는 러시아 이름(그리고 애칭)들과 유럽어가 뒤섞이며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 내가 읽고 있는 게 무엇인지, 주인공은 누구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헷갈린다. 머리가 살짝 지끈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다.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할 고단한 삶이, 수없이 많은 이의 삶이, 각 챕터 안에 고유하게 살아있다는 생각에 아직 놓지 못하고 읽게 만들었다.
🔖 도시의 잔해에는 삶의 세가지 층, 전쟁 이전의 삶, 전투 시기의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이 담겨 있었다._3권 384p
🐧 전쟁 중에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1천일 넘게 참상을 기록한 작가의 지독한 관찰은 그 수많은 삶을 이야기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그저 스쳐가는, 아니 잊혀지기 뻔한 이름들과 지난한 나날들을 전쟁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함께 책에 담아낸 작가에게 그저 존경을 표한다.
최전방에 전사자들이 매장되었다. 이들은 그 영원한 잠의 첫날을, 그들의 동지들이 편지를 쓰고 면도를 하고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벙커와 은신처 바로 곁에서 보냈다.-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