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을 받은 여자가 있다. 나이는 스물일곱. 4년 전 걸렸던 암이 완치되어 안도하며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는데, 재발했단다. 이제 사랑하는 남편을 놔두고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여자는 결심한다. 남편 잭에게 새 아내를 구해주고 떠나자고. 아무리 남편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게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치솟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소설이 10여 개국에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어찌 보면 통속적일 수 있는 ‘남편을 위한 새 아내 구해주기’라는 테마를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다뤘을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에서 내 마음을 기어코 움직이게끔 하는 무언가가를 보았다.
그 무언가란 우선 소설 화자 데이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에 있다. 맨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 시종일관 데이지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데이지란 캐릭터는, 정말이지 사랑이 넘친다. 이를 테면 유방암으로 인해 가슴을 절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데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어째서 허벅지나 쏙 들어가주면 고마운 배에는 암이 걸리지 않는 걸까? 그럼 기꺼이 포기했을 텐데” 이 비참한 상황에서 나라면 이런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 있을까. 이처럼 명랑해지려 끊임 없이 애쓰는 화자 데이지에게 자꾸만 끌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남편 잭에게 새 아내를 구해주는 일은 어떻게 진행될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쉬울 리는 없을 테다. 아무려나, 그 쉽지 않은 일을 위해 데이지는 안간힘을 쓰지만 잭에게 적합한 아내가 쉬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데이지는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 잭의 사진과 신상 정보를 올리기까지 한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겨우 적임자랄 만한 여자를 발견해낸 데이지. 그러나 막상 새 아내 후보자 패멀라를 보면서 치솟는 미묘한 심리를 데이지는 어찌할 수 없다. 데이지는 패멀라의 장점에 안도하면서도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결점이랄 만한 걸 찾으려 한다. 거기다가 잭과 패멀라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임을 알고 나자 데이지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한다. 잭을 안고 있을 때에도 데이지의 머릿속에서 패멀라는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마음이 약한 우리의 주인공 데이지는 잭에게 새 아내를 구해주고 떠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데이지는 이 일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한다.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절친 케일리에게 상처를 주기까지 한다. 케일리를 떠나보내며 데이지는 이렇게 고백한다. “제대로 죽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사실 새 배우자를 찾아주고 떠난다는 생각을 끄집어낸 것부터가 기적이다. 데이지는 잭을 끔찍이도 사랑해서 그런 발상을 떠올렸지만, 세상 누구보다 잭을 사랑하기에 이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데이지가 심리치료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에 무슨 대단한 신파가 들어있는 건 아닌데도, 잭을 향한 데이지의 애틋한 사랑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 가슴은 자꾸만 먹먹해진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랬다. 데이지는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 장에선 남편 잭이 화자로 등장한다. 혼자 남게 된 잭은 데이지 없이 어떻게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데이지를 버티게 해주는 건, 잭을 잘 챙겨주는 꼼꼼한 새 아내가 아닌 한 마디 말이다. 바로 ‘어디에 있든지.’라는 말. “‘어디에 있든지.’ 그렇게 말하면 데이지가 쪽지 남기기를 잊고 직거래 장터나 요가 수업에 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잭은 고백한다. ‘어디에 있든지.’ 이 말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주는 작가의 선물이 아닐까. 이 귀한 선물이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