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금붕어의 욕조
  • 그리스인 이야기 3
  • 시오노 나나미
  • 20,700원 (10%1,150)
  • 2018-07-30
  • : 1,038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 정규 교과 과정에서 세계사 혹은 사회 시간에 들어봤을 이름이다. 어린 나이에 동방원정을 떠나 동방과 서방을 아우르는 제국을 세운 위대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로 마케도니아에 대해 아주 얕게 배웠던 기억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혹은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화 정도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해결한 지혜로운 왕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동쪽과 서쪽에 걸친 넓디넓은 영역에 제국을 세우게 된 걸까? 우리는 이제 마냥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런 일이 한 개인의 능력과 야망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과연 이 모든 일이 알렉산드로스라는 영웅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일까?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에세이, 《그리스인 이야기 3》에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스스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연구에 몰입하고, 관념에 도전하는 역사 해석과 발군의 필력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그녀 스스로 마지막 역사 에세이일 것이라고 소개한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3권이다.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는 앞서 나온《로마인 이야기》시리즈가 그렇듯 그리스의 태동부터 말로까지에 해당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꽉꽉 눌러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1》은 그리스의 시작부터 페르시아 전쟁 전후까지를 담았다면, 《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민주 정치의 황금시대와 우중 정치 시대로 나누어 그리스의 한창때를 이야기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그린《그리스인 이야기 3》은 총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원래 패권의 중심이 되던 아테네가 어떻게 무너지고, 그 권력이 스파르타와 테베로 넘어가게 되는지를 설명하며 마케도니아가 제국으로 도약하기 전 그리스와 주변 지역의 사회·정치·경제·군사·문화를 아우르는 전반적 상황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게 기반을 다진 필로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를 어떻게 동양과 서양을 융합한 제국으로 만들어나가는지를 상세하게 담는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무너진 마케도니아와 함께 발흥한 헬레니즘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이야기한다.


마케도니아를 동양과 서양을 잇는 대국으로 성장시킨 가장 큰 공은 알렉산드로스에 있기에 이 책 분량 반절 이상이 알렉산드로스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난 역량과 업적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 제국 건설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재밌게 본 부분은 뛰어난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세계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다양한 배경을 설명한 부분이 내게는 더 흥미로웠고 현대인인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유연성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민주정치는 잘 활용하면 많은 이점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정치 시스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아테네에서는 유일무이한 절대선이라는 느낌을 주는 '민주주의'로 변용된 상태였다.

-《그리스인 이야기 3》중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민주 정치로 흥한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가 무너지는 모습이다. 흔히 민주 정치는 으뜸의 정치체제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 정치가 그리스 안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역사적 사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나타난 독재 정치체제가 오히려 마케도니아를 제국으로 키워내는 모습이 나온다. 민주 정치가 당연한 것으로 배워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뭇 당황스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한 정치 체제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 체제도 사람이 고안했기에 완벽할 수 없다. 각 정치체제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현재 정치체제를 보완하는 또다른 정치체제 역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유력자 사이에는 양쪽 모두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배턴터치가 어려워진다. 이것이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46세의 필리포스는 확실히 바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배턴은 20세 아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스인 이야기 3》중

《그리스인 이야기 3》에서는 마케도니아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필리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리포스는 강력한 군사 훈련으로 성장한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문무를 모두 겸비한 인재로 알렉산드로스가 거듭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을 해준 것이다.

필리포스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단결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을 키우고 나라 전반을 재정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케도니아가 다른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패권국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페르시아 전쟁 때 이후로 단결된 적 없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스파르타는 제외)을 동맹국으로 만들어 좁은 그리스 지역 안에서의 싸움을 막고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개인의 위명에 많은 다른 인물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알렉산드로스는 분명 당시에 다른 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일을 해낸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를 도운 '컴파니언'과 충복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스승이 없었더라도 그가 동서양의 융합을 이뤄낸 세계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물만이 아니라 복잡한 당시 사회 상황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를 너무 영웅시하며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인 이야기 3》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띄엄띄엄 알고 있기만 했던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사 에세이였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본래 역사 전공자가 아닌데도 그리스의 방대한 역사를 그리며 동시에 그리스 문화와 사상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에 크게 관심 없는 현대인이라도 재밌게 읽을 법하게 적절한 비유와 설명을 곁들였다. 이렇게 내용을 알차게 눌러담았기에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는 베개 같은 500여 페이지 분량의 책 세 권으로 완성되었다. 분량에 놀라 뒷걸음질 칠 수 있지만 꽤 재밌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철저히 유럽중심적인 시각에서 쓰였으며 종종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하기 위해 풀어쓰다보니 그리스와 그리스가 아닌 지역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이나 '그리스-오리엔트'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분은 자칫 독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아쉬웠다. 특히 이 책이 역사에세이를 표방하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지식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의 관점에 의탁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독자들이 잘 주지하고 읽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민주정치도 만들었지만 우중정치도 만들어냈다. 시민 전원의 투표도 이뤄냈고 부정 투표도 실현했다. 올림픽도 발명했고 보이콧도 발명했다.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그 이면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유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건너편을 '아시아'라고 이름 붙인 것을 비롯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많은 것을 고대 그리스인에게 빚지고 있다. 철학과 과학, 예술만이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인의 역사도 감탄과 어이없음의 되풀이였던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3》중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 많은 것을 빚졌다. 그 때의 그 도시국가가 이루던 그리스는 사라졌더라도 그리스의 빛나는 문화와 사상은 유럽인들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주변에 살아 숨쉬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세계 곳곳에 스며든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금 긴 여행일 수도 있지만 재치있고 똑부러지는 해설자인 시오노 나나미와 함께 옛 그리스로 산책을 떠나보면 당신도 모르게 그리스인들이 가진 이야기에 매료될 것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