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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몬 님의 서재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오쇼 라즈니쉬
  • 6,300원 (10%350)
  • 1999-06-25
  • : 1,040

존재의 본성이란 존재 그 자체의 가장 끄트머리 혹은 가장 밑바닥이나 맨 꼭대기에서 항상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미증유의 일을 탐험한다. 그래서 사상 초유의 사건 사고는 항상 생기는 것이다. 


붓다의 유일한 표현은 모순을 통해서이다.(A는 A가 아니므로 A이다)

존재로 가득차 흘러 넘치는 그러한 차원에서는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그 차원에서는 논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진리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언어적 정의는 "연기"라는 자기지칭의 모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가르침으로도 이 삶을 다 담을 수가 없다. 어떤 가르침으로도 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삶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떤 가르침으로도 존재를 딱 맞게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가르침은 한계를 갖고 있다.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삶은 강물이다 붓다는 우리가 진짜로 실재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에서 모든 명사를 떼어내고 동사만이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강물이라는 말은 참된 말이 아니다. ‘물 흐른다’는 말이 진실이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거기 그대가 사라지고 없을 때에만 그대는 진짜로 있게 된다. 거기 아무도 없을 때 위대한 현존이 찾아온다. 에고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대는 전체이며 그때 그대는 존재와 하나이다. 그대라는 하나의 물방울은 사라지고, 바다가 된다. 한편으로 그대는 사라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정한 그대가 나타난다. 그때 최초로 본대의 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무는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거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무는 긍정적이지도 않고 부정적이지도 않음을 뜻한다. 여기 그 둘 다 사라지고 없다. 그 이원성은 여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한 침묵이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고 그대 자신조차 발견하지 않으면서 그대는 자유롭다. 그대가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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