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오수영 2002/10/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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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인류 전체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환경파괴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점에 이 소설이 발표 되었다면,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고래를 자연에 빗대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는 '친환경적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난 이소설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어리석은 도전을 찾기 보다는 '복수' 그리고 '집착'이 가져오는 '파멸'을 보았다.
이 소설을 읽기전인 어린 시절 TV에서 난 한 용감한 선장이 자신의 발 한쪽을 잃게 만든 흰고래 모비딕을 잡기 위한 모험담을 본 기억이 있다. 내 기억속의 그 이야기는 '신받드의 모험'과도 같은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꿈으로 가득찬 모험의 세계가 아니라는 현실을 인식할 만한 나이가 되어 화면이 아닌 문장을 통해서 접하게 된 선장과 흰고래의 대결은 더이상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아니었다. 바다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인 흰고래에 대한 사냥은 모험으로 가득찬 여행이 아니고 어떤 것에 대한 분노와 집착의 구렁텅이속으로 빠져드는 복수심의 항해였다.
이 항해가 결국 배가 난파당하고 선장은 모비득의 등에 묶여 바다 저 깊은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의 불행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미래의 운명도 불행하게 바꾸어 놓으리라는 어떤 암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피해자인 선장과 가해자인 모비딕의 대결구도는 복수심에 대한 의미없는 집착을 선장이 고집함으로서 결국 과거에 한쪽 다리를 잃었던 선장이 모든것을 잃게 되는 결말처럼 반복되어지고 결국 파멸을 맞이 하는 것이다.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들은 복수를 할 만한 일이 자신에게 생기면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현실적인 계산과 이성적인 계산에 따라, 즉 복수는 모든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복수는 자신 또한 파괴시키게 된 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복수에 대한 열망은 차차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은 엉클어지고 한 번 엉클어진 흐름은 것잡을 수 없이 덧나고 말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어긋난 것을 되돌리면 그 엇나감은 또 다른 엇나감이 있어야 원상태로 돌아오는데 이미 엇나간 상태는 시간의 흐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원래의 흐름을 찾을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굽히지 않는 짐념과 무한한 것(자연)에 대한 용기 그리고 불타는 열정대신에 복수와 집착이 가져오는 파멸을 보게 되는 나는 과연 내 자신의 흐름에 순종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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