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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너 필링스
  • 캐시 박 홍
  • 15,300원 (10%850)
  • 2021-08-17
  • : 7,398

『마이너 필링스』는 시인 캐시 박 홍이 쓴 에세이이다. 총 일곱 챕터로 이뤄진 『마이너 필링스』는 한국계 미국인 캐시 박 홍이 미국 사회의 아시안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모멸감과 부당함, 동시에 백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모순적인 감정을 '마이너 필링스'로 명명하는 과정의 모음이다. 어떤 글은 정체성의 소멸을 지향해야 한다는 시인임에도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차단하고는 활동할 수 없었던 미국 문단계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창작을 고민했던 흔적이었으며, 어떤 글은 "티슈를 크리넥스로 부르듯 중국인을 아시아인을 부르는 대유법으로" 여기는 백인 미국인들의 서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던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감정과 자취를 추적하는 작업기이기도 했다.


작가 미라 제이콥이 이 책을 두고 "누군가 나를 끌어다 의자에 앉히고 '네 감정이 진짜라고!'라고 말하며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았다"라고 평한 것처럼 『마이너 필링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마이너 필링스를 마이너minor의 영역에서 메이저major의 영역으로 끌어오게 한다. 하지만 캐시 박 홍의 글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이너 필링스를 정체성 정치에 이용하는 데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홍은 아시안계 미국인과 백인 미국인 사이의 관계가 피해자와 가해자로만 이해될 수없이 복잡하며 특히 미국 사회의 한국계 이민자들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아시안이라는 인종 정체성 때문에 혜택도 누린 사람들, 인종차별의 가해자의 위치에도 서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만 살아가면서 "서로 대립한 채 각자 분노하고, 각자 슬퍼하고, 각자 절망한다"면 소수적 감정은 절대 '보편화'될 수 없고, 세계의 '보편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우리야말로 지구상에서 다수이므로, 보편적인 것은 백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차단된 상태다. 여기서 우리란 비백인을 말한다. 즉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 홍수와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을 가리킨다."(255)



…나는 무더운 이번 여름 이 책이 내 영혼을 붙잡고 여러 번 뒤흔드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


하얀 토끼 모양이 그려진 포르노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던 어린 캐시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아이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을 때, 할머니의 엉덩이를 걷어찬 백인 아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아버지를 누군가 목격할까 걱정했을 때, 단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백색의 광경이 러버콘 주황색처럼 강렬하게 느껴질 때,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충분하지 못하다고, 그래서 더 잘하려고, 더 잘 되려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 자신을 알아차릴 때 느꼈던 감정은 캐시의 것만이 아니었다.


소수적 감정은 절대 '소수적'이지 않지만 "마침내 외부적으로 표출되면 적대, 배은망덕, 시샘, 우울, 공격의 감정으로 해석"(78)된다는 점에서 '소수적'이며,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이너 필링스』는 오랜 기간 의심을 받아 온 내 안의 소수적 감정들이 저절로 사라지기는커녕 끈적한 침전물이 되어 내 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했다.


게다가 캐시의 자기 성찰은 소수적 감정이 나르시시즘으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을 만큼 날카롭다. 나는 미국의 인종주의에 관한 캐시의 글을 읽으며 한국의 인종주의를 떠올렸다.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적이지만 여전히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과 우리가 식민주의의 영원한 피해자라는 인식이 만연한 탓에 인종주의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백인 순수가 종말 했듯이 한국 사회의 민족 순수도 종말 한지 오래다. 나는 한국인들이 『마이너 필링스』를 읽고 우리 사회의 경제가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 특히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산재와 죽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현실,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단일 문화 지향적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 등을 인식하는 데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의 마이너 필링스를 친족과 혈족에 기반하지 않는 대안적인 정체성 구축과 의식적인 결연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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