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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다말고
  • 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 오에 겐자부로
  • 16,200원 (10%↓900)
  • 2017-04-24
  • : 4,013

제목의 뜻을 밝히고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프로이트가 남긴 많은 개념 중에 '가족 로맨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이쯤된다고 해둘 수 있겠습니다.


'가족은 자신들의 기원을 사실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들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에게도 가족사에 얽힌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스님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의심쩍은 이야기다. 큰 아버지가 세 번 장가를 들거라는 것이 하나고, 내 아버지가 단명할 거란 것이 둘째다. 마지막으로는 이 집안에 큰 인물이 날 거라는 말이다. 나는 도시화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부모세대에서 이촌향도하여 도시에 적창했다. 내게 시골 산골은 부모의 고향으로서만 기억에 있다. 저 전설도 마찬가지다. 체감할 수 있는 증거물이 아무 것도 내겐 없어 말뿐인 미신이다. 향토에 대한 기억이 없다시피 하지만, 이런 나 또한 가족사를 거슬러 근대사를 접하고 체감한다. 먼 귀경길을 밟아 내려간 땅의 기억이 내게도 남아있다. 나의 외가, 친가 두 할아버지 모두 대한민국의 남한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오사카와 원산에서 태어났고, 어떤 경위를 거쳐 벌교와 해남에 정착했다. 나는 인천 만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암의 실공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가리봉동에서부터 인천 동구의 항만 근처까지 영세한 작은 공장들이 수없이 자리잡았었다. 이 경공업 지대에서 근로했던 것이다. 각각 부산과 서울을 거쳐 이곳 인천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이런 토양으로부터 성장하여 사회로 나가야 했다.


마쓰사부로 집안의 이야기를 소개하기 앞서 더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집안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의 집안은 테베의 왕가이지만, 일찍이 신탁에 의해 버려져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간통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는 이 사실을 깨달고 자신을 두 눈을 찔러 눈이 먼다. 마쓰사부로 집안의 두 형제도 눈이 멀쩡치 않다. 다카시는 엽총탄에 두 눈을 잃고 즉사했다. 오이디푸스보다 과격한 신체파괴를 자행하고 자살했다. 만엔 원년의 풋볼의 이야기는 다카시의 이야기다. 그도 근친상간자였으나, 술에 취해 정신박약의 여동생과 관계를 가진 인물이었다. 여동생은 이후 자살했다. 그는 오이디푸스처럼 기개에 넘치는 삶을 살아보지 못 하였고, 언제나 수치심에 시달리며 왜소한 삶을 산다.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치부를 괴로워하다 봉기를 일으키고 죽었다. 다카시의 남은 형인 마쓰라부로(이하 소설의 화자 ‘나’)는 한 쪽 눈을 아이들의 돌팔매 놀음에 잃었다. 망막이 손상되서 눈의 형체는 남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마쓰사부로는 자신의 한쪽 눈이 내면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런 심안은 그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 평화로운 내면세계를 관조하지 못한다. 망가진 눈은 망자와 장애인, 퇴형적인 자신과 중독에 빠진 삶에 고정된채 감기지 않는 물고기의 눈처럼 항상 떠있다.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으나 먼저 죽었다. 고향 시골마을처럼 집안도 쇠락했고, 패전한 일본을 살아내야 할 짐에 마쓰사부로와 다카시도 신음한다. 근대화가 실패한 것이다. 1860년 만엔 원년, 일본이 막 개국과 근대화의 격류로 들어서던 시기에 고향 마을에서는 징세에 저항하는 농민 봉기가 있었다. 중간관리층을 맡은 마쓰사부로의 집안은 증조부와 증조부 동생으로 분열했다. 동생은 농민을 조직하고, 죽창으로 무장시켜 영주에게 맞섰고, 형은 그런 동생을 단칼에 베어 진압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남았다. 마쓰사부로가 생각하는 진실은 마을사람들이 믿는 그런 무사 이야기 같은 것과는 다르다. 정황을 통해 볼때, 동생은 도망쳤을 것이다. 봉기가 답보 상태에 빠지고 진압군에 쫓긴 상황에서 증조부 동생이 곶간채에서 화승총을 들고 항전하다 죽었다는 전설도 있으나, 이 이야기 또한 신빙성이 낮다. 만엔 원년의 봉기는 이 마을 절에 지옥도란 불화와 마을 축제의 염불춤이라는 행위로, 즉 민속유산으로 남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만엔 원년으로부터 100년(1860년부터 1960년), 이 100년은 개화가 들이닥치고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지는 긴박한 격량의 시기였다. 역사가 멈출지 모르고 전진했다. 그러나 이 마을은 관으로부터 도망쳐 산골에 정착하였고, 다시 그곳에서 다시 징세에 저항하여 봉기하길 반복해왔을 따름이다(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초조카베 모토치카에게 쫓겨 산골로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창립 신화가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에게 만엔 원년의 봉기는 오래된 전설과 민속으로 남아 있다. 반면 다카시는 그 실패한 봉기에서 인간 해방의 좌절과 가능성을 읽어내고, 현재에 다시 되살리려 한다. 자신들의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선조들의 봉기로부터 찾는 것이다. 분명 시작은 자유, 해방,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했던 근대화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던 메이지 유신마저도 비참한 결말로 끝났다. 세계사에서 작은 산골의 봉기의 실패는 머나먼 고립된 사건이고, 비록 이 마을이 내의 고향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만엔 원년의 봉기는 마쓰사부로가 인식하는 세계, 또는 "지금 여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는 원폭을 맞은 나라, 패전한 나라, 나아갈 길을 찾지 못 하는 나라만이 있다. 안보투쟁으로 좌절한 인민이 있다. 항문에 오이를 박고, 얼굴을 붉게 칠한 채 목을 메달고 죽은 친구가 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퇴형적인 인텔리에게 어울리는 결말일지, 정신병자의 마조히스트적인 발악일지. 나는 사태를 감당하기 앞서 사태를 규정할 도리가 없다. 그런 나는 정화조 구덩이에 파묻혀 죽으려 했던 실패이다. 아내도 나도 죽지도 못하고 있다. 새출발을 하지 못한 채 그래도 썩어가듯 살아있다. 나의 첫째 아이는 정신박약아로 태어났고 보호시설에 위탁하였다. "나" 마쓰사부로는 도대체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진실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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