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베트남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긴 글을 쓴다. 그러나 정해진 곳에서 차례를 맞춰 죽는 죽음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썩은 몸과 똥 냄새가 차오른 다음에서야 청소하듯 장례를 치르도록 만드는 것은 죄이다. 위생적이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 몇몇 사람들과 달리 대부분의 이들은 그토록 소란스럽게 죽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모는 로자가 병원이 아닌 그녀의 유대인 둥지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이 굶어죽기 직전까지 로자를 떠나지 못 했다. 생은 버림받음이 아닌 만남이다.
모모는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나 또한 어느새 하밀처럼 세월 앞에 늙어버렸다. 가끔씩 이 질문을 잊곤 했다. 그래서 난 다른 질문들과 다른 대답들을 찾아다녔었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보는 것이 그 하나였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달성하며 살아보는 것이 또 다른 하나였다. 나는 다른 질문의 답을 찾아 다니던 중 모모의 질문을 어디선가 포기했었다. 가끔씩 잊는다니, 그건 노인에게만 허락된 평화다. 하물며 모모는 하밀에게도 다시 한번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의 질문에 대답한다.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