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클라라와 태양>은 "엄마"에 대해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기원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AF 클라라를 도입한 부분은 아빠, 아들, 다른 딸처럼 친족이 아닌 중립적인 관찰자를 두려고 그랬다고요.
이야기에서 파고드는 관계의 중점이 항상 "엄마-딸"을 벗어나지 않고요. 다각도로 보게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클라라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은 서로 대체할 수 없지만 양립하면서 조시를 향해요.
클라라도 엄마처럼 조시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이 이야기에서 아빠는 "엄마-딸"의 관계에서 철저히 외부자로 머물러요(이런 점은 릭과 그 엄마에서도 반복되고요). 아빠는 엄마와 달리 반체제적 정치집단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먼 인물이 되고요.
AF를 도입한 이유는 과학 기술이 "대체 가능한 것"과 "대체 불가능한 것"이 한 몸에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지점을 파고들고자 한거 같아요.
클라라는 조시에게 여러 서비스, 돌봄의 일부 기능 제공할 수 있고 항상 조시를 위하지만, 조시는 정말 아플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엄마를 찾죠.
엄마는 샐처럼 조시가 '향상'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면 클라라에게 '조시 역'을 맡겨 위안을 삼으려고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요.
'관계'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지점을 파고 들어요.
엄마는 딸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 제도적 욕망에 따라 '향상'을 선택하고, 클라라는 조시기 '향상'의 부작용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길 바래서 기도하죠.
이 교차점에서 모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시가 위독한 때, 릭 앞에서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엄마의 말들이 기억나요.
가장 강렬한 지점이었어요. 여기서는 클라라로부터 엄마의 내면으로 더 포커스가 이동해요. 엄마로서의 욕망과 죄책감이 교차하고, '향상'하지 않은 아이 릭에 대한 멸시와 향상을 선택한 자신의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요.
그러나 조시는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향상'을 누리고 살게 되었죠. 클라라의 기도 덕분에 태양이 도와준 걸까요? '향상'은 위험했지만 딸이 견딜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엄마의 선택이 옳았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