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희야 2019/10/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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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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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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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인 폴란드의 '태고'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태고는 시간과 공간이 중첩된 신화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다. 소설 속 3대에 걸친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20세기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를 통해 분할점령 받았던 시대부터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까지 긴 시간 동안 태고에서 태어나 태고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성서와 그리스로마신화를 차용해 서술하는 84편의 이야기들은 역사적 전개를 따라가는 사실주의라기 보다,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마술적 사실주의에 가깝게 느껴진다. (읽는 동안 계속해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생각났다.) 폴란드 신화와 전통에 무지해서 사실 몇 몇 이야기들의 주제와 의미들은 이해하지 못해 아쉽다.
전쟁이 발발해 축출된 남편 미하우와 태고에 남아 홀로 뱃 속의 아이를 출산하여 기르며 방앗간을 운영하는 아내 게노베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러시아 군인인 이반 무크타와 독일 군인, 그리고 전쟁으로 마을과 가족이 붕괴되는 태고 사람들의 시간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을 보여준다. 소설 속 폴란드 유대인 학살이나 전쟁 중 자행되는 강간과 같은 상황은 '태고'가 가상의 마을이 아니라, 현실에 생동하는 마을인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땅바닥에 누워 있던 사람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강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게노베파는 그녀가 미시아와 동갑내기 친구이자 셴베르트네 식구인 라헬라임을 알아챘다. 품에는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 군인 한 명이 무릎을 꿇더니 침착하게 그녀를 조준했다. 라헬라는 한동안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군인이 달려가 그녀를 발로 밀어서 돌아 눕히는 것을 게노베파는 보았다. 군인은 아기를 싼 새하얀 포대기를 향해 총을 한 방 더 쏘고는 트럭으로 돌아갔다.]
전쟁 상황에서의 남성 서사만을 다루는게 아니라, 올가 토카르추크는 역사의 전개 과정 중 흐려진 여성의 삶을 밀도있게 다루며 서사를 층층이 쌓아간다. 특히, 임신과 출산이라는 태고적 여성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삶과 죽음을 찬찬히 서술하고 있다.
[남자보다 여자가,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남편보다 아내가 더 빨리 죽는 시절이었다. 여자는 인류가 은밀히 고여 있는 그릇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아이들은 여자들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다음 깨진 알은 스스로 붙어 다시 고유의 형태를 회복해야만 했다. 여자가 강할수록 더 많은 아이를 낳았고, 그로 인해 여자는 조금씩 약해졌다.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에 플로렌틴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산의 굴레에서 마침내 해방되었고, 결국 불임의 열반에 이르게 되었다.]
태고에는 다양한 군상의 여성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전쟁에 나간 남편대신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게노베파, 몸을 팔아 연명하다 아이를 잃고 세상의 섭리를 깨달은 뒤 태고의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는 크워스카, 네 번의 출산으로 점차 몸과 마음이 망가져가는 미시아,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노인 플로렌틴카, 전쟁 중 강간으로 상처를 입고 잘못된 결혼을 선택해 불행한 루타,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스타시아, 어머니의 신화를 이어갈 아델카까지. 사랑과 전쟁으로 파괴된 삶이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삶의 일상성과 비극은 오히려 담담하게 다뤄진다.
독특한 것은, 메르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본 뜬 크워스카와 그의 딸 루타에 대한 부분이다. 이들의 기이한 능력으로 벌어지는 마술적 상황은 소설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식물 엔젤리카와 교접하여 루타를 낳는 모습이나, 버섯균과 대화하는 루타의 모습을 통해 동식물, 신과 천사, 죽은 영혼들도 이 소설에서는 주체가 된다.
또 상속자 포피엘스키가 하는 <이그니스 파투스.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은 작은 태고와 그런 태고를 바라보는 신을 연상시킨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과 태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태고를 바라보며 등장하는 소설 속 신은 완전하고 전지전능하며 불멸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가끔 연약한 신은 사람들에 의해 버려지고 잊혀지기도 하며 상처를 받는다.
작가가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신은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신은 모든 변형 속에서 박동한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조금만 있고, 때로는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신은 그가 거기에 없는 순간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 스스로가 과정의 일부인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불변의 대상을 고안해내고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완벽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리하여 신의 불변성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사람들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그렇게 상실하고 말았다.]
중간 중간 작가가 던진 질문으로 생각할 거리들이 많고, 아직까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 폴란드의 신화와 전통들을 알고 난 뒤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 노벨문학상을 통해 대단한 작가를 알게 되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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