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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root072님의 서재
  • 있는 그대로
  • 데이비드 갓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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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5
  • : 1,473

마하리시나 마하라지 같은 인도 성자들의 연원은 인도 전통의 범아일여 사상과 연계된다. 즉 아트만과 브라만의 통일을 근본 기조로 하여, 개체적 집착을 버리고 우주적 자아를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목표로 하며, 나와 남이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는 무아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와는 그 초점이 다르긴 하지만, 명상 수행을 통한 해탈 구도의 노상에서는 한번쯤 참고해도 좋은 책이다. 


사트 치트 아난다(Sat-chit-ananda) 즉: ‘실재-의식-지복’으로 번역되는 이 산스크리트어는 참자의 세 측면이다. 


참자아 탐구를 계속하다 보면 사람과 사물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점차 바뀐다. …

참자아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의식이 점차 변형되고, 결국 이기적인 에고를 넘어서는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 


참자아는 현상계 속에 두루 스며 있고, 동시에 현상계를 품고 있는 전일적(全一的)인 실재이다. 


그대가 ‘나는 참자아를 알 수가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주관과 객관이라는 상대적인 지식의 범주에서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는 상대적인 지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대 자신도 상대적으로 인식하려고 한다. 이런 잘못된 정신의 습관 때문에 그토록 분명한 참자아를 모르는 것이다. 

참자아는 객관적인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경전은 지성을 통한 탐구는 진리를 직접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성은 진리로 인도하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몸은 결코 그대가 아니다. 참자아는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이 참자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 그대일 뿐, 결코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 
말은 생각이 일어난 다음에 나온다. 모든 생각은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다음에 생기기 때문에, ‘나’라는 생각이 모든 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흐름이 정지된 상태로 그냥 있을 때에는 침묵이라는 전우주적인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명상은 에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에고가 있고 집중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참자아는 하나인데, 명상에서는 이렇게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때문에 간접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고는 그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사라진다. 에고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남아 있는 것이 참자아이다. 이렇게 근원을 찾는 것이 직접적인 방법이다.  
참자아를 망각하고 육체나 마음을 자기라고 생각한다. 이 그릇된 동일시가 불행을 낳는다. 
감각을 통한 앎은 직접적인 앎이 아니다. 그것은 간접적인 앎이다. 자신에 대한 각성만이 직접적인 앎이며,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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