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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재
  •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 10,800원 (10%600)
  • 2007-01-12
  • : 12,985

출구는 오직 하나, 굴뚝이다. 육신의 재를 남기고 연기가 되어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그곳, 아우슈비츠. 현대 증언문학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최대의 강제 수용소이자 집단 학살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가 경험한 1년여간의 체험과 관찰을 담고 있다.


레비는 1919년 북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레비가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무렵,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인종법’의 반포로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제도로 강화되었고, 이에 레비는 반파시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3년 독일군이 토리노를 점령하자 레비는 반(反) 파시즘 저항운동에 참여했지만, 밀고를 당해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로 송치되었다. 이후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모든 평범한 습관과 사물이 제거된 수용소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 부품처럼 죽어가고 또 금방 채워지기를 반복한다. 그곳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들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거되며, 살아남은 자들은 절도와 사기라는 생존 방법을 터득하는 한편 점차 동물화 또는 사물화 되어간다.


그들은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살아있다고 부르기가 망설여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레비의 문체에서는 증오심이나 복수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통을 앞세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일 또한 없다. 그저 시대의 심판에 맡기고자 목격한 상황을 증언자로서 기록할 뿐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생생하면서 아프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이 잔혹함 속에서 희망을 알게 된다.


과거를 외면하거나 모른 체한다면 희망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감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무관심과 막연한 낙관주의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위기감을 잃어버린 채 그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에 급급하다. 우리가 끝났다고 믿는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고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과거를 낡은 것, 이미 지난 일로만 치부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점점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의무로, 동시에 위기로 본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위기, 귀 기울여지지 않을 위기,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넘어서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뜻밖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뜻밖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레비는 이 문장을 쓴 이듬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자살한 예는 드물지 않지만, 레비의 이 마지막 선택은 ‘과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가 아닌, 무관심한 세상에 ‘역사의 무게’를 절실하게 알리고 싶었던 일종의 투항이지 않았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오늘날, 잠시 레비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인간의 무게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 가는지, 또 나라는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과거에 물어 스스로의 존엄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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