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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 것 뿐이다" 라는 말로 요약되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이 책의 메인 테마다. 


조국, 윤미향, 이재명 같은 정치인의 공통점을 들라면, 법정에서 드러난 빼박 증거에는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법정 바깥에 나와서는 "나는 단지 정상적인 업무를 지극히 정상적으로 수행하였을 뿐이다."라는 논지를 편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 여기서도 드러난다고나 할까.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현대 정치, 특히 일부 좌파 정치인들의 위선과 뻔뻔한 태도에 적용하여 비판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사유의 불능'에서 '의도적 무사유'로의 확장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적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부의 명령을 비판 없이 따르는 '사유하지 않는 능력(무사유)' 때문에 악을 저질렀다고 보았다.

 현대의 위선적인 정치인들은 단순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영 논리에 갇혀 도덕적 오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내로남불 논리로 합리화한다. 이는 '사유의 불능'이 아니라 '사유의 거부'이며, 훨씬 더 기만적인 악의 형태일 수 있다. 


2. 관료적 순응에서 '정치적 뻔뻔함'으로의 변질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명령 수행이라는 '관료적 업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현대의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언행이 도덕적, 법적 기준에 위배됨을 알고도, 지지층을 결집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뻔뻔함을 무기로 삼는다. 이는 평범한 관료의 무사유가 아니라, "확신범적인 태도로 위선을 유지하는 행위"인 것이다. 


3. '평범성'이 악행의 면죄부로 악용될 위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학살의 주범을 경시하거나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악은 평범하다'는 논리가 현대 정치에서 위선적인 지도자들이 자신의 중대한 도덕적 결함을 "나도 인간이라 실수할 수 있다", "정치적 모함이다"라며 일상적인 '평범한 오류'로 축소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악의 무거움을 '보편적 현상'으로 치환하여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4. 사유하지 않는 죄의 현대적 재해석

 이 책에서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죄"라고 경고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위선을 인지하지 못하는 뻔뻔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진영 논리에 따라 그들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대중 역시 '사유하지 않는 죄'를 공유한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악의 평범성은 지배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위선을 허용하는 사회 시스템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에서 더 비판받아야 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악의 평범성' 관점에서 정치인(혹은 진영 논리에 매몰된 일반인)의 위선에 적용한다면, "나치의 폭력은 멈췄으나, 사유하지 않는 맹신과 진영 논리에 기반한 '위선이라는 악'은 오늘날에도 너무나 평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비판은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는 능력(thinking)"이 멈춘 자리에 뻔뻔함과 위선이 어떻게 악을 합리화하는지 지적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할 것이다.  


위정자의 범죄 비리들을 묵인하고 옹호하는 무지한 국민들의 "생각없음"이 "악의 뻔뻔함"을 이 땅에 만연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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