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님 신간. 김초엽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선물 받아서 읽게 되었다. 가장 눈이 갔던 두가지는 표지 일러스트와 장르였다. 현대문학 핀시리즈의 이번 일러스트는 이동기 작가님. 미술관에서만 보던 그림을 서점 매대에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동기 작가 특유의 색감, 아토마우스 캐릭터가 책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용과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표지에 일러스트를 넣고 뒷표지와 책등에 강한 색을 넣는 방식이 여러모로 책을 주목받게끔 하는 것 같다. 두번째로 장르. 이 소설이 호러,공포 소설로 분류되어 있는 걸 보고 흥미가 더 높아졌다.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탓도 있고, 김초엽 작가님이 쓰는 호러 소설은 어떨지 기대도 됐다.
소설의 제목인 므레모사는 지역명이다. 주인공인 유안을 비롯해 헬렌, 레오, 쿤, 이시키와, 주연은 므레모사 투어에 참가한다. 므레모사는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금지구역이 된 지역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다시 삶을 꾸리러 온 '귀환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므레모사 투어가 시작되면서 므레모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크 투어리스트, 유투버, 기자, 학자 등 므레모사에 닥친 비극과 그 참극을 보고싶어하는 사랆들이다. 주인공인 유안은 의족을 단 무용수이다. 다른 참가자들은 유안이 폐허 속 희망, 회복 같은 것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지만 유안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유안은 이곳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남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한 레오의 계획에 끌려들어가며 므레모사의 실체에 점점 가까워진다. 므레모사의 원주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변화를 겪었다. 그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딱딱한 나무처럼 변해갔다. 그들은 알 수 없는 향기와 세뇌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이번 투어로 유입된 사람들까지 자신의 삶을 도와줄 귀환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세뇌하고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유안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원했던 것은 죽음이나 회복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유안의 전 애인이자 재활 치료사인 한나는 늘 유안에게 회복을 강조했다. 살아있는 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라는, 유안의 회복을 말하는 한나 곁에서 유안은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잘린 다리가 아직 느껴진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한나의 기준에 맞춰 회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행동한다. 유안이 다시 춤을 추고 움직이지 못하면 한나의 입장에서 그것은 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안은 그 자리에 뿌리박혀 있으면서도 존재하고 살아있는 귀환자들을 목격했다. 유안에게 보여준 한나의 사랑은 진실했을지 몰라도 한나는 유안의 삶을 이해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재활 치료사인 한나가 회복, 이전과 같은 삶을 사는 일에 집중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니까. 하지만 유안에게 사고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했고 그것을 소망하지도 않았다. 춤을 추지 않아도, 걷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잘린 다리의 감각을 지니고도 계속 살아갈 방법이 필요했다. 유안과 한나의 이해가 어긋나는 곳에서 이런 그로테스크하고 극단적인 결말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상을 비정상, 비일상으로 규정하고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능성의 모색이 필요했던게 아닐까. 기형의 신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수많은 상처와 상해로 빚어진 삶을 이해하는 것이 폐허가 된 므레모사에 남겨진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