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처럼』은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가족으로 부를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이 가족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인간과 갈등을 겪는다. 성장의 시기에 내가 채빈과 떨어져 지내게 된 상황과 다시 함께 살아가게 된 상황은 찢긴 종이를 다시 붙이고자 하는 것만 같다. 종잇조각은 서로 붙어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찢기기 전의 상태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이처럼 나와 채빈도 위태롭게 붙여진 상태에 불과해진다. 나와 채빈, 엄마는 한집에서 함께 살지만, 단시간에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지는 못한다.
법적으로, 형식적으로 이들은 분명 가족이지만. 법이 말하는 가족과 우리가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가족 사이에선 낙차가 존재한다. 채빈과 나는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채빈은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나와 엄마를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낸다. 가족이 된다는 것 아니 적어도 한 존재를 나의 존재라고 여기는 첫 번째 증표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채빈은 삐약이를 데리고 온 이후, 집 안으로 들이는 모든 존재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내가 결말에서 채빈에게 집을 지나갔던 존재들의 이름을 묻는 것은 채빈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채빈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들의 이름을 물으며, 내가 채빈을 이루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채빈이 가족으로 생각했던 존재들을 기꺼이 나 또한 가족으로 여기겠다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진정 가족으로 서로를 여긴다는 것, 가족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채빈, 별나와 이룬 가정 더 나아가 우유도 포함해서 이루게 될 가정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동물을 책임진다는 의식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라는 전제에서 벗어나 우리 또한 하나의 존재로서 다른 존재와 긴밀한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애정할 수 있는 단계 그것이 곧 우리가 만들어나갈 가족의 형태일 뿐이라는 것을 해당 소설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