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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은 산다는 것이 사칭의 연속임을 ' 사칭'이란 시에서 말한다.

 그러나 '강함'을 사칭해야 하는 10대 소년보다 힘들기야 하겠는가.

작은 체구, 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빠진 아빠,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투잡을 뛰는 엄마.

형편이 어려워져 변두리로 이사가면서 전학 간 학교에서 따돌림과 지독한 린치를 당한 엘리엇.

엄마는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다시 이사를 간다. 좀 더 나은 동네로.

 

엘리엇은 이 새로 간 학교에서마저 악몽과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가면'을 쓰기 시작한다. 가면 아래에서는 끝없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러나 엘리엇의 '사칭'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단지 loser가 되지 않겠다는 목적과는 달리 그는 가해자가 되기를 종용받는 것.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인용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엘리엇의 상황을 묘사하는 초반부가 혹시나 전형적인 청소년기 학교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중반을 넘어서면서 상당히 박진감 있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혹시라도 상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을까, 전형적인 결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끝에 맞닥뜨린 갑작스런 결말에 잠시 멍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효과적인 결말이다.

 

 오웰의 '1984년'에서

 학교의 가해자 그룹은

"박해의 목적은 박해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다. 이제 당신은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는가?"

를 인용하며 엘리엇에게 통제자가 되도록 몰아가고

여자 친구 루이즈는

"'1984'의 영웅은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 그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야 해.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역사를 날조하고, 진실을 숨겨야 하는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말이야, 결국 그는 선택해. 체제에 복종하지 않는 길을 선택해. 신념을 따르고, 위험을 감수하지. 그래서 자유를 얻는 거야..."

 엘리엇의

"그래서 그 사람은 성공했어?" 라는 질문에

 루이즈는

"아니.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마지막에는 그들이 그를 처형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 사람은 자유로웠어. 그게 중요한 거야. 그 사람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어. 남이 시키는 대로 생각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했어. 그를 처형할 때도 그들은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들은 결코 승리했다고 할 수 없어. 그들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지."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컬릿 전쟁'과 겹쳐진다. 좀 더 희망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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