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건 사람 사는 모습을 그린 문학책에도 해당하는 말이겠다.
즉 문학작품의 근원적인 주제는 몇 가지로 수렴되며 그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만 끝없이 변주된다.
시공간적 배경, 소재, 작품 중 화자 등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양상을 얼마나 그럴 듯하고 설득력있게 그리는 가에 따라 재미있거나 혹은 없거나, 좋거나 아니면 그저그렇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어린이책에 애완동물, 특히 강아지가 등장하는 것은 아주 흔하다.
주로 개의 무조건적인 충성심,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을 배우게 하는 존재,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역할 등이 주로 어린이책에 나오는 개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식당 뒷마당에서 태어난 개의 '견생유전'을 개의 입을 빌어 풀어나가는 로이스 로리의 이 책은 바로 그 점이 다른 '개'를 소재로 한 책과 가장 차별화된다.
도입부를 보면 키퍼의 말대로 스스로 자기가 '개'라고 밝히기 전까지는 사람이 말하는 줄 알았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 일찍이 부모에게 버림받아 먹고사기 위해 먹을 것을 훔치고 구걸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행운과 주위 사람 덕분에, 한편으로는 좋은 머리와 빼어난 외모 덕분에 -- 내 뻔뻔함을 용서하기 바란다.-- 부와 며예를 얻었다. 지금은 시골로 내려가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조용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여기까지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을 것이다. 한때 정부의 높은 자리에서 일했던 어떤 사람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정치는 나에게 열려 있는 분야가 아니다.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갯과에 속한다. ... 사람들이 흔히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들으면 여러분은 내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것이다. 바로 개다!"
이렇게 프렌치 레스토랑 뒷마당에서 지저분하게 태어나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옮겨 다니며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키퍼는 자존심 높은 개다. 게다가 언어 감각이 뛰어나 늘 압운을 맞춰 시를 짓는다. 그리고 개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방식이나 심리를 관찰한다.
만약 또 한 권의 개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개 이야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읽으라고 권한다.
모든 장르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 로이스 로리의 능력이 놀랍다.
SF '기억전달자', 사실소설 "그 숲에는 거북이가 없다',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 이야기를 쓴 "별을 헤아리며" 등등.
원문은 읽지 못했지만 단문으로 탁탁 끊어지는 문장이 힘있게 느껴지는 번역 또한 좋다. '웨이싸이드 학교의 별난 아이들'을 번역한 김영선의 번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