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데 '초정리편지'만큼 재미있고 완성도 높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때는 조정의 천주교 탄압이 심하던 시기. 장이라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 아비는 필사를 업으로 삼는 필사쟁이로 서쾌 최씨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한바탕 서학쟁이를 잡아들이는데 장이의 아비는 서학 책을 필사했다하여 잡혀들어가 모진 매를 맞고 결국 장독으로 세상을 뜬다.
최서쾌가 장이를 거두니 장이는 책방에서 심부름도 하고 언문소설도 베낀다.
어느 날, 최서쾌의 심부름으로 홍교리댁에 물건 하나와 '동국통감'을 전하러 가는 길에 물건이 궁금하여 열어보다가 시정잡배 허궁제비에게 빼앗긴다.
물건은 상아로 만든 책갈피였다. 허궁제비는 사흘 안에 닷전을 가져오면 상아찌를 돌려주겠다한다.
책방에서 쫓겨날까봐 겁이 난 장이는 홍교리에게 물건을 오는 길에 기생집 도리원에 빠트렸다고 둘러대고 홍교리의 서재에서 인생의 도움이 될 대화를 나눈다.
장이가 자주 심부름 다니는 집이 한 곳 더 있었으니 한양의 고관대작들이 드나드는 기생집 도리원이다. 기생 미적이 언문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집에는 남동생 백일잔치 돈 때문에 기생집에 팔려온 낙심이라는 애기기생이 있었는데 야무지기 짝이 없다.
천주학이라는 끈으로 이어진 홍교리, 최서쾌, 미적. 그리고 필사쟁이의 아들로 입양되어 글씨를 깨우친 문장(文匠), 영특한 장이의 무른 성정을 채워주는 낙심이, 자기를 거두어 준 은덕도 배신하는 허궁제비가 엮어나가는 이야기는 조선말기의 서적문화와 천주학을 잘 엮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책 말미에서 천주학을 탄압하는 조정의 책뒤짐 손길에서 홍교리를 구해주는 장이.
장이는 홍교리의 책 중에서 천주학 책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책 제목 "책과 노니는 집"은 홍교리 서재의 이름 서유당(書遊堂)과 장이의 책방 간판으로 쓰라고 홍교리가 써준 서유당의 한글이름이다.
본문에 나오는 몇 구절
'손님의 마음 시중까지는 아직 멀었구나."
기생 미적에게 '구운몽'을 권하려 하는 장이에게 최서쾌가 이르는 말.
--구운몽이 재미도 있고 격조도 그만하면 괜찮으나 여러 여자와 노는 서생의 이야기를 기생이 좋아하겠느냐고, 그보다는 기생의 몸으로 서생과 사랑을 나누고 못된 양반을 혼내주는 '춘향전'을 권하라고.
--또 심청이 스스로 뱃사람에게 팔았다는 걸 끝내 아비가 딸을 판 거라며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화만 내고 눈물을 터뜨리는 낙심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이에게 최서쾌가 하는 말.
'책방을 차려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고, 새로 들어온 책의 자리를 찾아 주고 싶구나. 단골손님이 오면 이야기책도 소개해 주고...... 그렇게 사는 게 아비 꿈이다.'
'평생 책 베끼는 일을 하며 책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이렇게 호사스런 직업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도 장이 너와 작은 책방을 꾸려 이렇게 살고 싶다.'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을 좋아한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며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방각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