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에는 추리와 공포를 읽고 보고, 감상해야 한다 라는 모종의 세뇌가 되어있는 나는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올해도 역시 여름이 찾아오기 무섭게 책 고르기에 열을 올렸다.
셜록홈즈와 뤼팽, 매그레 형사 시리즈의 시대보다 시간을 더 뒤로돌려 중세로 간다. 마침 국내 유일 완역본으로 개정판이 나왔기에 두근두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 종교, 미스테리가 만나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중세 시대의 생활 또한 묘사가 생생하게 되있어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문장 한줄 한줄에 빠져들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완두줄기를 베는 장면을 상상하며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본다.)
혼란스러운 무정부 영국을 배경으로 12세기, 1137년부터 1145년 사이의 시리즈 소설로, 많은 추리소설의 배경이 그렇겠지만 캐드펠의 시대는 마냥 밝고 즐거운 세계가 아니었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1138년 여름의 배경이고 스티브 왕과 모드 황후의 내전 중 슈르즈베리 성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처형 당한 반란군 94구의 시체들을 슈루즈베리 수도원 원장 헤리버트가 기독교 매장을 하면서 한 시체가 더 많은 95구를 발견하는 것으로 긴장감을 고조 시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모든 존재와 냄새, 인생 등이 뒤섞이고 얽힌 시대이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캐드펠 수사의 추적도 흥미롭지만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도 관심이 갔다. 마치 중세판 <인간극장>과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것 같다. 십자군 전쟁과 바다 전쟁을 거치고 수사의 길로 들어선 캐드펠은 비범한 두뇌로 천재적인 추리를 펼치기 보다는 범죄 현장에서 부딪히는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캐릭터로 친근감이 들었다.
캐드펠은 작업실로 가서 오후 내내 여러 가지 허브주를 정성껏 조합하고 새로운 것을 빚는 일에 열중하다 저녁기도 시간이 되었을 때야 교회로 돌아갔다.(P.211)
오스번은 그제야 안심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고, 캐드펠은 그가 떨쳐버린 불안과 우울의 짐을 대신 짊어진 채 성을 들어섰다. 타인을 구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그 짐을 대신 짊어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와 똑같은 무게만큼의 짐을! (P.316)
그 가난한 사람도 한 번쯤은 왕이 치르는 돈으로 호사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봤자 그 비용은 사회의 위계질서를 따라 차례로 내려가 결국은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에 지워지고 말겠지만. 끊임없이 희생을 치르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의 몫을 단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P.326)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