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는 1981년 5월의 첫 살인으로 시작한다. 그날 밤 더는 희생자가 아닌 사냥꾼으로 다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2017년 4월, 독일의 맘몰스하인 지역에서 테오도르 라이펜라트라는 84세 노인이 자택에서 죽은 지 한참 지난 시신으로 발견된다. 얼핏 보기에 자연사인 것 같은 고령 노인의 단순 독고사인가 싶었는데 그를 둘러싼 여러 정황이 심상치 않다. 노인이 늘 데리고 자던 개와 은색 벤츠의 행방은 묘연했다.
수사를 맡은 피아 산더 형사와 파트너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은 저택을 조사하던 중, 뒷마당 견사에 갇혀 굶어 죽기 직전의 앙상한 개를 발견한다. 굶주린 개가 땅을 파헤쳐 놓은 곳에는 뼈가 쌓여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뼈였다. 수십 년간 이어진 연쇄 살인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노인의 집은 과거 수녀원을 개조한 곳으로 1차 대전 이후 수녀들이 장애아들을 데려다 키우며 일종의 보육시설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이후 실제로 부부는 보육원 출신의 여러 아이를 양자로 입양하여 돌보며 지냈다고 한다. 아내 리타가 20여 년 전 실종된 이후 줄곧 혼자 살아온 테오, 정황상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의 집 뒷마당에 파묻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진짜 범인인지, 아니면 또 다른 피해자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라이펜라트 가 출신의 양자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취조하고, 증언을 하나씩 고르게 엮어가는 수사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그들 모두는 용의자이기도 하고, 숨겨져 있던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수 십년에 걸쳐 살해된 많은 희생자는 모두 여자였으며, 5월의 어머니날 전후로 살해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왜 죽였을까?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출생의 비밀을 찾고 있는 피오나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를 만난 피오나는 자신이 그들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피오나의 엄마 찾기는 이 사건과는 어떻게 엮이는지 추리하며 따라가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장르소설을 워낙 좋아하는 지라 허술한 전개나 뻔한 반전, 특정 인물의 수상한 낌새는 금세 알아채는 편인데, 마치 멀리서 다가오는 커다란 윤곽의 형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또렷하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은 디테일을 하나씩 끄집어 올리는 전개는 굉장히 탄탄하다.
라이펜라트 가와 연관된 사람들이 한 명씩 계속 교차하며 용의선상의 수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은 계속 도돌이표를 그리며 헷갈리게 한다. 의심을 보내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절정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에서의 요동치는 긴장감을 눈이 읽는 속도가 못 따라가서 헉헉대며 뛰어가느라 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는데 100미터 달리기라도 마친 것처럼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역시 제일 좋아하는 장르라 오랜만에 홀린 듯 읽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가히 유럽 미스터리미 여왕이라 불릴만 하다.
악은 특별하지 않고 항상 인간적이다. 우리와 같은 침대에서 자며 한 식탁에 앉는다. 는 W.H.오든의 말처럼, 평범 속에 늘 도사리는 악은 역설적으로 바른 인간으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OCN 오리지널 시리즈의 팬이라면, 특히 ‘터널(2017)’, ‘작은 신의 아이들(2018)’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와 트라우마가 연상되는 이 소설에 더더욱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