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임은비님의 서재
  • 인간만세
  • 오한기
  • 11,700원 (10%650)
  • 2021-05-25
  • : 337
지금까지 출간된 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를 모두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떤 기준에서 보아도 다양한 형과 색을 가진 책들을 시리즈로 엮었다는 것이다. 대개 출판사의 시리즈를 따라 읽다 보면, 통일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와 달리 소설향 시리즈는 소설 한 편 한 편이 모두 다른 주제와 다른 문체, 다른 기법을 추구하고 있다.

오한기의 『인간만세』는 그 다름에 힘을 싣는 소설이다. 읽는내내 자주 들었던 생각은, 대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거지?였다. 이게 대학교 소설 창작 시간에 배운 <후장사실주의>인가보다. ‘인용의 인용’. 정지돈 작가님께서 특강을 오셔서 개념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었었고 잠깐 빠져가지고 찾아서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무언가를 쓰거나 말할 요량으로 읽지 않는다면 흥미롭고, 무언가를 쓰거나 말하려고 읽으면 당혹스럽다. 줄거리 요약이 어렵달까.

그래도 이전에 읽었던 소설들보다는 『인간만세』는 비교적 줄거리 요약이 쉬운 편이다. 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는 ‘나’, ‘나’가 진행하는 고전 강독회의 유일한 회원이자 문학의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화학 전공 교수 kc, 집요하게 ‘나’의 상주 작가 자리를 노리는 진진, ‘나’의 마이크를 가지고 도망친 초등학생 민활성, 그 민활성에 모티프를 받아 ‘나’가 만든 가상의 인물 EE, 도난당한 마이크를 찾아내라고 윽박지르는 도서관 관장, ‘나’의 소설엔 리얼리즘이 없다고 피드백하는 공무원 후배까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있고, 이 미쳐있음은 일상과 멀어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인물들은 ‘나’와는 밀접하게, 자기들끼리는 느슨하게 얽혀 있다. 인물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소설이 끝나버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책을 읽는 날이 쌓일수록 특히 서사의 기법이 실험적이지 않은 책에 손이 갔었다. 나도 모르게 문학의 정상성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느꼈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환기를 시켜준 작품이라 반가웠다. 무언가에 심각하게 천착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