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은 성격이 급한가 보다. 벌써 이리 덥다. 얼마 전 김금희 작가님 신작을 읽었다. 목소리에 문제가 생긴 성우 손열매가 돈을 떼먹고 사라진 선배, 고수미의 고향 완주로 가서 보낸 여름날의 기록이다. 열매는 수미네 매점을 보면서 수미 엄마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정체 모를 어저귀, 불량 학생 양미, 퇴물 배우
정애라, 탐욕스런 이장 등 마을 군상을 마주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무척 재밌다. 난생 처음 오디오북을 찾아 듣고 싶을 만큼!

오디오북을 먼저 론칭한 [듣는 소설]이라 그런지 캐릭터가 분명하고 대사도 찰지다. 내가 더위에 지친 건지 사람들에 지친 건지 정말 오랜만에 몰입해 읽었다. 사랑도 일도 뜻대로 안 돼 마음에 상처를 받은 열매가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점점 회복하는 이 이야기는 혼자 일하거나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자주 받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묘한 회복력을 선사한다. [소속감은 가족만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느 한 사람과만 나눠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마음속 상처는 그 맥락에서 풀어야 해요. 감정은 관계의 잔존물이니까요. _90쪽]

까맣게 잊고 있던 소싯적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FM 음악도시 시그널 블롱코의 트래블링을 수백 번 들었던 사람 특히 레너드 스키너드 노래 심플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169페이지를 읽을 때 마왕 신해철의 중저음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울컥하다 나처럼 울었을지 모른다. 문학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네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세계를 언제든지 작동시킨다는 명백한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이런 말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힘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_169쪽]

작가는 손열매를 통해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우리가 타인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스스로 돌보며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바라고 있었다. 이제 열매의 인생이 완만한 상승곡선으로 이어지기를. 세상관조적인 어저귀가 다시 누군가를 구원해 주길. 무엇보다 학교에서도 포기한 양미가 부디 단단한 어른이 되길. 하지만 양미가 이 글을 보면 이럴 것 같다.[열나 꼰대 같은 소리 하네. _86쪽]

작가 인터뷰를 봤는데 이야기 속 수미의 고향 완주는 중의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완주도 맞대요.
하지만 전주 옆에 완주는 1도 상관 없는 가상의 마을입니다

경고! 고속도로 주행 중 사진 촬영은 위험하니 삼가하세요.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_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