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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닷컴님의 서재
  • 우리의 사람들
  • 박솔뫼
  • 12,600원 (10%700)
  • 2021-02-10
  • : 1,376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4차원이라고 한다. 공간의 3개의 차원과 시간의 1개의 차원. 그중 공간의 차원은 앞과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시간의 차원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인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즉, 시간의 차원 역시 사실은 겹겹이 쌓여 우리가 뒤로도 갈 수 있지만 물리 법칙상 안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우리 차원이 11차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작은 미시공간의 차원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시간의 차원처럼 우리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차원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겹겹이 쌓여있지만 우린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없어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그런 차원... 


박솔뫼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런 차원들을 상상했다. 공간의 차원이 겹쳐있다면 거기에 꼭 누군가가 있다와 없다를 구분지을 수 없지 않을까? 그녀는 공간에 없지만, 동시에 공간에 있는 사람을 겹쳐본다. 그렇게 그녀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렇기에 그녀는 공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듯하다. 하나의 공간을 상상하고 거기에 사람을 둔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린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만 걸러내어 그들은 연결하고 중요한 맥락을 파악하는 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 놓친 많은 것들이 있다. 각각의 부산물, 각각의 사이에 있던 느슨한 연결 고리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들.


공간에 사람을 두었을 때 특별한 것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간에 있는 사람을 상상하면 그 모든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들이 보인다.  '중요하지 않다'고 바라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존재의 일부를 지우는 것이 아닐까? 마치 '양면 인쇄로 들어가야 할 부분이 앞부분만 인쇄되어 발송'된 글처럼.


뇌과학에서 인간이 가장 창의적으로 될 때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줄 때라고 한다. 그녀는 굉장히 특이한 문장을 쓴다. 그동안 의식의 흐름 기법을 썼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은 그래도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라면 박솔뫼의 문장은 정말 의식이 흘러가는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비문은 당연하고 문장의 앞뒤가 뒤집혀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걷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흐르는 듯 연결해서 하듯 그녀의 문장은 그런 과정을 그대로 적고 있다. 익숙한 일상을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문장으로 보여주면서 읽는 이에게 여러 가지를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이것은 중요한 것들만 기억하지 말고 다른 것들을 보고 상상하려 하는 그녀 마음의 발로가 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공간들의 겹침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존재의 겹침을 생각하고, 그 겹침에서 일어나는 파동을 꿈에서 들으며 그것을 발화하거나 글로 쓴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소설가의 메타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꿈은 가끔 글을 쓰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말하곤 하는 그들에게 찾아오는 어떤 영감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친구들이 숲에 갈 것이라고 했다.- P9
다른 세계를 생각해도 엄청난 것 대단한 것을 떠올리지않고 같은 나라의 다른 도시의 내가 살 법한 조건들을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선택하지 않은 걸음들을 간 사람을 가정하는 것이다.- P12
졸다 깨다 아직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리였고 하지만 그래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12월 31일이 되면 어째서 나 자신과 가족들 친구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P13
친구들은 숲에 가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째서 늘 숲에는 친구들만 있는 것일까.- P25
하나가 자꾸 보는 붉은 원처럼 이상한 점들이네 분명히 사람이지만 웃긴 점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P33
누군가 드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P35
단순한 감정으로는 싶지 않음에 훨씬 더 가깝지만 그중 어떤 감정은 말하고 싶음 써두고 싶음 외치고 싶음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P51
동면자들은 꿈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사라진 시간들을 복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기에는 잠이 전부이기 때문에 꿈의 흔적을 좇아 동면의 시간으로 떠난 자신이 실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음을 그 떠남을 떠올리고 더듬어나가며 자기 자신과 또 어딘가에 있을 자신에 대해 이해해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는 적어도 나는 내가 있었다면 내가 했다면 좋았을 것에 대해 그것은 허황된 꿈과 바람이지만은 않고 사실 했을 법하지만 왜인지 아련한 것들에 관해 쓰기 시작합니다.- P55
동면자들이 기억하려고 애쓰는 꿈들은 가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지 않을 때 그들을 찾아왔다.- P58
동면자들이 기록하는 꿈에 관한 기록은 나 역시도 어디에 있든 조금 보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62
몸을 숨기고 이름을 숨기고 버티어 살아낸 사람에게는 이름과 자격이 선택적으로 주어진다.- P84
조한이가 길가에 붕 띄운 정신이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중략)... 그런 것은 가볍게 몸을 붕 띄워 은행잎 더미가 되지는 못하고 아직 이미 죽은 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119
잠을 푹 잔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돌아다니며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나가 보였다.- P143
양면 인쇄로 들어가야할 부분이 앞부분만 인쇄되어 발송되었다.- P155
그런데 어떤 장면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것은 찍힐 수도 없었다. 보는 사람은 있었을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 P165
그런데 가끔 내가 그 영화를 지어냈다면, ....(중략)... 내가 보았던 것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면 생각한다.- P171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중략)...아니 그들이 반복한 것은 그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P177
종종 어떤 곳은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았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P195
내가 본 것이 지금 보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일까. 어떤 상이 조정되고 맞춰져 하나의 모습이 될 일은 아니다. 서울은 보는 것이 좋은가 서울에 있는 것이 좋은가.- P205
이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여기서 갇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그대로 나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P216
이 모든 것은 쉬지 않습니다....(중략)...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이야.-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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