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플라스틱이나 병이 생기면 가능한 한 깨끗하게 해서 아침에 밖에 빼둔다. 원래는 저녁에 두어야 하는데, 아침에 빼두어야 할머니들에게 기회가 생기기에 일부러 아침에 빼두곤 했다. 그게 용돈일지 아니면 생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얼마나 모아야 돈이 될까? 저분들은 어떻게 재활용품을 모을 생각을 하셨을까? 왜 서울시나 정부에서는 하청업체를 통해 깨끗하게 정리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답과 함께 더 큰 숙제를 던져준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 생겨나는데는 재활용품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도시와 돈이 필요한 노인, 그리고 재활용 산업이 맞물려 있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여기서 발생하는 제도적 빈공간에서 재활용품을 '낚아채어' 수입을 만들고, 그걸로 생활한다. 그들은 사회의 복지에서도 희망의 상징인 시간이라는 흐름에서도 그들이 쌓아왔던 가족에게서도 멀어져 있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사회와 법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생계에 관련된 재활용품 가격은 막상 '시장' 논리로만 정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
현실을 알게 되니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사회 구조적으로 너무도 복잡하게 꼬인 노인들의 현실을 정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더 그렇다.
이 책은 작가가 만난 다수의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정보를 이용해 현실적이고 전형적인 70대 여성 노인을 가상으로 만들어내어, 그녀의 하루를 보여주며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제도, 시대 등 관련 정보들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가상의 그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민낯. 복지 정책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나라가 힘들 때 시대의 중심에서 국가와 사회의 변화 때문에 고통을 겪고 그 결과를 사는 이들을 왜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고 문제를 알았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번 문제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꼬여있어 정부마저도 암묵적인 '재활용품 수집'을 허용할 뿐 풀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희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래도 우린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가 출발점일테니.
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P9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건 현재의 노인 세대로, 노인들의 가난은 그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산물이다. - P9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존 경로가 바로 폐지를 줍는 일(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등장)이다.- P10
현재의 여성노인들은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이로 인해 경력과 숙련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여성노인은 이전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P12
이 책은 가난한 삶의 경로와 우연하지만 필연적이었던 구조들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P13
더 나아가 이것은 70대 중반의 여성의 평균적 존재를 구상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P18
과거 넝마주이의 일이 넝마주이와 고물상과 폐품 매입업자 사이의 단순한 거래 관계였다면, 지금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이보다 더 고도화된 ‘관계‘에 갇혀 있다. 이제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자원순환 정책과 재활용 산업에 매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제도와 산업,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위험한 일에 불과하다.- P31
이렇게 빈곤율의 추이가 나아질 수 있다고 안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다림은 잔혹하다. 해방기에 태어난 지금의 노인 세대가 양극화된 사회를 버티다 사망해야만 이루어지는 결과이므로.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노인이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기 전에 이미 노령기에 접어든 이들이라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한 도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구집단"이라는 특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P48
지금의 노인들은 (안정망이 구비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이후 세대와 달리 자력갱생의 요구를 받았다.- P51
몇몇 노인들은 가족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지우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부양의무자‘로 인한 문제다....이는 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의 부를 기준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가족이 개인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옅어진 관습의 흔적이다.- P54
그 수치의 정합성을 떠나, 이 170만 명이라는 수는 재활용품 수집을 하는 이가 (당시) 국가의 적극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는 계층일 것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다.- P65
1995년 들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생겨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 이전까지 넝마주이와 고물상이 재활용 업체와 직접 거래를 해왔지만, 이 시기부터 공공영역이 재활용 산업에 개입하였고, 관리의 직접적인 주체가 됐다.- P68
골목에서의 ‘문전수거 방식‘은 빈틈을 낳는다....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다...재활용품 수집은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ㄷ르어낸 변종의 직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 P74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제도 바깥의 영역에 존재한다.- P76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비공식적인 노동이며, 도시가 온전히 공식적으로만 작동할 수 없으며 비공식성으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 그러나 허가와 신고를 거치지 않고, 일종의 사각지대로서 암묵적인 용인 아래 유지되는 상황이다.- P79
이 가격은 제도에 의해 정해지기보다는, 최종 구매자인 제지업체가 정한 가격에서 중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들을 뺀 가격으로 결정되는 형편이다.- P104
고물상과 노인들은 모두 일종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며 사회의 암묵적인 용인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다...(중략)...
고물상을 통한 ‘지원‘은 사실상 어렵다. 고물상의 불안정한 혹은 불법적 처지 때문이다...(중략)
재활용품의 가격 산정 과정은 ‘시장 논리‘라는 수사 외에는 달리 설멸할 길이 없으며...- P110
제도와 재활용 산업의 먹이사슬 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한 직업- P112
영자씨의 주도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그녀가 휘말렸던 국가와 사회의 유동적인 변화 과정이었다.- P128
국가는 헌법에서 개인이 가지는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국가는 자신의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한 면이 있으며, 개인은 스스로 살 방법을 강구하며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P131
한국사회의 고용 정책은 65세 전후의 나이인 은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게끔 계획됐다...(중략)...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은 노인을 복지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다.- P142
노인일자리사업은 한국사회가 지금의 노인들에게 은퇴 후에 더 낮은 질의 노동을 하여 생존하라는 생애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예로 여겨진다.- P144
노인에게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 P146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문제는 사회복지정책뿐만 아니라 재활용정책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P182
재활용품 수집은, 노인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생계 방편이다. 이 현상에는 재활용품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행정력이 부족한) 도시와 돈이 필요한 노인, 그리고 재활용 산업이 맞물려 있다.- P202
그렇지만 이제는 ‘가시적인 빈곤이 사라진‘ 시기다. 단순한 관찰과 입소문으로는 속사정을 알 수 없다.- P205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청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 재활용 산업에서 발생하는 돈 일부를 스스로 취하고 있을 뿐이다.- P207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 체제의 불안정함과 미비함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깨달음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대적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 P209
현재의 지원 형태는 노인들을 ‘치사‘하게 만든다.- P224
만약 정부에서 이 사업들을 마땅한 ‘일자리‘라 여긴다면, (노동자의 자격 조건을 논하기 전에)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갖춰야 하는 건 아닐까?- P228
근근이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자립보다, 함께 모여 서로에게 의존하는 자립이 필요하다.- P229
한국사회는 노인이 되어서도 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일하는 즐거움이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충분한 복지 혜택은 없고, 노후의 생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둔다.- P230
경로당에는 복지관과 주민센터와 지역의 여러 자원을 잇는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P250
노인들을 선발해 돈 벌 기회를 주는 선별적인 정책으로만 땜질하는 복지로는 문제가 계속될 뿐이다.- P255
이 사회에서 모두가 신체의 속도와 살아가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는 걸 이해한다면 좋겠다- P265
산업 역시 노인계층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복지사업으로 ‘노인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깆ㄴ의 산업 바깥에서 일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일자리사업이 제공할 수 있는 일이란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