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5 ~ 02.19
며칠 전에 읽었던 <<완벽한 아이>>는 작가 모드 쥘리앵이 완벽한 아이를 만들겠다는 집착을 가진 아버지에게 완전한 정서적 지배를 받으며 집에 갇혀 지내던 절망적인 상황을 동물과 책과 음악을 통해 견디며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 선택한 책은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였다.
아이는 처음부터 세상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고, 갇힌 곳에서 자라났지만 책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버티고 밖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른은 어떨까? 이미 세상을 알고 있고 비이성에 대한 두려움과 분함도 알고 있는 어른은?
유제프는 수용소에 갇혔고, 수많은 동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다. 절망만 남았을 그곳에서 정말 생각도 못할 방법으로 그와 동료들은 멘탈을 유지하며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가 즐겨읽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내용들을 기억하며 정리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수용소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지 않고 오로지 현재형의 시간 속으로 주체를 함몰시키는 프루스트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잊으려 했을 것이다.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재구성한 내용이기에 당연히 기억의 오류도 있을 것이고 그가 기억하려고 하는 구절들을 기억해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의 영혼의 뒤척임 같아 더 매력적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감상하기 위한 지식들도 얻을 수 있으나 정말 얻어야할 것은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집에 갇힌 아이, 인간이 인간을 가두는 부조리한 공간인 수용소에 갇힌 한 어른은 이런 절망적인 닫힌 공간에서 책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가끔 난 왜 책을 읽을까란 질문을 하곤 하는데, 좋은 답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의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1924년 무렵이었다.- P39
서른다섯 살까지의 삶은 헤아려야 하고 또 헤아릴 수 있지만 그 후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작품과 버린 투쟁의 결과라고 말했다. 결국 한 작가의 삶에서 중심이 되며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것은 작가의 삶 자체가 아니라 그의 작품이다.- P57
프루스트의 감성은 현실에서보다 문학 작품 안에서 더 완전하게 발휘되었다. 그는 현실의 사건들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조금 늦게, 그리고 복잡하게 반응했다.- P60
직접 체험한 인상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완전한 고도 속에 용해되고 거기서 재창조되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옮겨졌다.- P61
그는 자신이 진 의무를, 어떤 인상을 느낀 순간 흥분하여 바로 무언가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상을 심화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당초 받았던 인상의 근원에까지 도달한 다음 비로소 그것을 인삭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P61
차가 지나갈 수 있게 비켜서다 고르지 않은 두 포석을 딛게 된 그는 불현듯, 과거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서 고르지 않은 두 개의 포석 위에 서 있던 때와 똑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P64
그때 그는 모든 세부적인 것들과 함께 구현되기만을 기다리는 자신의 작품이 다름 아닌 자기 안에 오롯이 있다고 확신한다.- P64
냅킨에 손이 닿는 순간 제법 분명하게, 이전에 그에게 똑같은 감각(놀라움과 충격)을 일게 했던 다른 냅킨이 떠오른다. 몇 해 전, 발벡 해안가의 그랑 호텔에서 만졌던 냅킨이다. 그것은 베네치아에서 받은 계시만큼이나 전격적이고 명확했다. 그는 문학적 야심을 다 끊어냈다 믿고 게르망트 저택에 간 것이었지만, 다시 한번 열정에 휩싸이고 명철해지면서 자신의 전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소명에의 확신을 갖게 된다.- P65
생명은 연속적이며 우리의 지각은 불연속적이라고 베르그송은 단언한다..... 프루스트는 지각의 불연속성을 무의지적 기억과 본능적 직감으로 극복하려 했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관점으로 생의 연속성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다.- P68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인물들에,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에 놀라게 된다.- P68
당초 프루스트는 이 거대한 ‘합‘을 행갈이나 여백 없이, 그리고 장이나 부 없이 ‘단 한 권‘으로 나타내고 싶어 했다.- P69
프루스트에게 있어서 사실이란 결코 날것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처음부터 문학으로 완전히 굳어진 그의 뇌 속에서 재조합된 무언가다. 더욱이 병과 코르크 벽 때문에라도 세상과 분리되고 있던 이 예술가의 시각 속에서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들이 에술적이고 과학적인 연상 작용의 조합으로 편곡되면서 무한히 풍부해졌을 것이다.- P77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그의 삶의 방향, 정신 또는 신체적 성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충격과 상처들이 이 책의 주제다.- P81
바로 아버지가 일관되지 않은 행동을 보인 그날 저녁이 그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병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비탈길에서 내리닫기를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은 신경증, 그리고 이 욕망의 뿌리가 허약한 신경에 자리하도록 만들었을지 모르는 복잡한 심리적 현상들이 이날 저녁에 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P84
그가 가진 주요한 매력은...합리적인 에고이즘에 있다. 돈 또는 사교계에서의 관계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자신의 본질이나 정수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환경으로 스스로를 이끌고 들어갈 줄 아는 이기주의 말이다.- P85
그녀는 애인인 스완보다 차라리 권태와 고독을 택한 것이다.- P87
바이올린의 주요 모티프가 스완으로 하여금 사랑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P88
너무나 행복했던 과거가 너무도 구체적으로 떠올라 가슴이 짖어지는 것같이 고통스럽다.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잃어버린 행복을 영원히 되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P89
저자가 일방적으로 어떤 관념이나 관점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사유와 감정능력을 일깨우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독자가 이제까지 쌓아 올린 삶의 가치 체계를 스스로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 P103
그는 서로 이질적이거나 양립하는 영혼들의 상태를 알아보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중략)... 그의 작품은 어떤 자각을 통해 삶을 여과하고 투사해 내면서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 P108
주인공이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은 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언가 때문이 아니며, 종교라는 이름의 무언가 때문도 아니다. 전광석화 같은 깨달음에 휩싸여서다. 코르크로 벽을 다 막은 방 안에서 그는 ‘살아 죽은‘채로 묻힌다.- P111
베르고트의 병세가 마지막 단게에 이르렀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이나 몇몇 특징은, 프루스트가 죽기 며칠 전에 보인 것들과 유사하다.- P122
베르고트이자 프루스트에게서 나온 것 같은 낮은 음성이 들려온다...(중략)...우리는 마치 공정함이나 절대적 진실, 완벽한 노력이라는 법칙들 아래 사는 것 같아. 이 법칙들은 조화와 진실이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 창조되어 있고, 그 반영들이 여기에 도달해 지상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겠지.- P124
닫힌 공간 속에 유폐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프루스트의 작품밖에는 없을 것이다....그토록 철저히 유폐된 공간에서 오로지 글쓰기 하나로, 프루스트는... 오로지 현재형의 시간 속으로만 주체를 함몰시키는 위력을 발휘하므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그나마 잊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P168
내 욕망과 의지는 정지되지 않고 다시 무언가를 계속 해나간다. 이 간극에의 강박적인 의식이 ‘신경증‘의 시작이라면, 그럼에도 잠시 동안은 아이처럼 내 작은 웅덩이에 바닷물을 잘 퍼 담았다고 믿으며 행복해할 때가 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실재와 현상은 동일한 것이다. 진리와 환상 여깃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신경증과 도착증의 연쇄 고리 속에서 늘,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이다..... 분리 불안의 증세 가운데 그토록 엄마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원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그토록 열망했던 것을 왜 그토록 열망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