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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만나다> 이 책과 만나게 된 건, 순전히 나의 지적 콤플렉스 때문이다. 이것저것 책을 읽어대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독서일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아마, 내가 잘 읽고 있는 건가? 아니면 '좀' 유명한 사람들은 어떤 책들을 읽나? 이런 궁금증 때문이리라. 책은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도대체 어디쯤에서 끝을 볼 수 있을까? 끝을 보기는 볼 수 있는 건가? 이런 의문들, 지적인 호기심과 막막함, 책 앞에서의 왜소함 들이 다른 사람의 독서일기를 훔쳐보게 한다. 그런데 그런 일기들의 공통점이란, 책읽기란 개인의 취향이라는 사실과, 역시 '난 사람'들은 '난 책'들을 읽어댄다는 사실이다. '난' 책? 그건 내가 읽어서는 일기를 쓴 사람의 취향이나 공감, 감동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책들을 말한다. '난' 사람들은 열렬히 상찬(賞讚)하는 책에서 난해함만을 느낄 때의 좌절과 슬픔…. 물론 간혹 '나와 같음'에 전율하게도 되지만…. 이 책 역시 그런 우려와 약간의 기대로 집어들었다.

<다양한, 이질적인 맞선> 이 책의 미덕은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원저자를 만날 수 있고, 그 원저를 해석하는 또 다른 저자들을 만날 수 있다. 18명의 저자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울림을 주었던 100여권의 책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준다. 이 책은 책과의 맞선인 셈이다. 이런 점이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독서일기를 접할 때보다는 실패와 당혹감을 최소화시켜 준다. 18명 중에 내 취향에 맞는 맞선을 주도하는 플래너(planner)를 만날 수도 있고, 내 취향의 그(책)를 만날 수도 있기에. 게다가 읽다보면, 만나다보면, 평소 취향이 아니었던 그들과도 소통해보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기도 한다. 독서목록이 늘어난 셈!

<세상을 읽는 법> 결국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제대로? 혹은 여러 각도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100여권의 책 중에 내가 읽은 건, 16권뿐이었다(제대로 읽지 않고, 팽개쳐버린 것까지 포함해서). 다시 작아지는 왜소함! 그것은 18이란 숫자로도 극복가능하기도 하거니와, 프롤로그를 통해서도 위안 삼을 수 있다. 그들은 책이란 단지 세상을 읽기 위한 '기계'일 뿐이라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세상을 읽는 기계와 내가 세상을 읽었던 기계가 다를 수 있고, 다를 수밖에 없다. 얼마나 큰 위안인가!

<세상을 사는 법> 왜 이런 책을 선정했는지, 어떻게 목차를 구성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없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세상을 읽는 법을 배웠다면, 그랬다면 세상을 똑바로 살라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법,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일상으로부터의 벗어나기, 탈주를 꿈꾸라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진정한 아웃사이더, 자유인으로 살라는 메시지,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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