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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20세기 피아니스트-4

③ 20세기 피아니즘의 흐름

정말로 하늘의 별만큼이나 그 숫자가 많은 20세기의 피아니스트들을 모두 살펴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몇 명의 예외는 있지만) 거의 유일한 연주자들이며,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많은 해석의 갈래와 개성, 그리고 무수한 카리스마들이 생겨나는 분야라고 하겠다.

우선 맞닥뜨리는 것이 분류의 문제이다. 각자만의 고유한 개성과 음악적 기질을 띠고 있는 이들을 무슨 수로 헤아려 나눌 것인가. 21세기가 바로 앞에 다가온 이 시점에서 드라마틱한 피아니스트, 서정적인 피아니스트, 혹은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와 아카데믹한 피아니스트 등의 나눔에 공감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궁여지책(?)으로 필자는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칙, 즉 민족과 국가라는 기준으로 20세기를 마음껏 ‘두들겼던’ 대표적 피아니스트들을 일별해 보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1950년 이전에 태어난 피아니스트만을 언급했으며, 선정된 피아니스트는 가급적 제외시키려 노력했다.


19세기 전통의 계승자들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일컬어지던 프란츠 리스트에서부터 현대 피아니스트들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리스트는 잘 알려진 대로 명교사 카를 체르니를 사사했는데, 체르니의 또 다른 제자 테오도르 레셰티츠키는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레셰티츠키는 폴란드 출신으로, 19세기 초까지 통용되던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손모양과 손가락에 부담을 많이 주던 주법을 버리고 릴랙스된 팔과 전신을 이용하는 소위 ‘자연주법’을 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전에 비해 확연히 무거워진 피아노의 액션이나, 텍스처의 확대에 따라 요구되는 오케스트라적인 음향을 위해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하겠다. 물론 리스트도 그의 연주 모습을 묘사한 삽화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의자와 악기 사이를 넓게 벌려 움직이기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고, 팔을 쭉 편 상태에서 상체의 무게를 이용하여 연주하는 ‘그랜드 스타일’의 자연주법을 몸에 익히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우선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를 가로질러 살았던 리스트의 제자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인물들로 한스 폰 뷜로·카를 타우지히·에밀 폰 자우어·모리츠 로젠탈·오이겐 달베르트·프레데릭 라몬트·조피 멘터·알렉산드르 질로티·아르투르 프리드하임·콘라트 안조르게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자우어·로젠탈·달베르트·라몬트·프리드하임 등은 20세기의 피아니스트로서 필수라고 할 만한 레코드 녹음(일부는 피아노 롤)을 남겼으며, 지극히 개성적이나 리스트의 학생이었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단정한 표정을 띤 연주를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지금도 구할 수 있는 레코드로 에밀 폰 자우어가 만년에 녹음한 리스트의 2개의 협주곡은 느긋한 템포로 결코 테크닉적이지 않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동시에 귀족적이고 장려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훌륭한 솜씨여서 역시 리스트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한편 레셰티츠키의 제자들은 리스트 계열보다 더욱 화려하고 다양한 음악성을 자랑했는데, 스승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로움과 자발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는 저마다 극히 유일무이한 개성을 지니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역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를 들 수 있겠는데, 거장적이고 루바토를 많이 쓰는 다소 옛스런 스타일의 피아니스트였다고 전해진다. 또 파데레프스키는 역사상 최대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로 알려져 있는데, 후에 폴란드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지낼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와 무대에서의 독특한 흡인력이 그 비결이었다고 하겠다. 이밖에도 오시프 가브릴로비치·마크 함부르크·이그나츠 프리드만·엘리 나이·아르투르 슈나벨·파울 비트겐슈타인·벤노 모이셰비치·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알레산더 브라일로프스키 등이 레셰티츠키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20세기 초의 대가들인 이들 모두가 전혀 다른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스타일리스트였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들 중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던 슈나벨이나, 실내악 연주에 주력했던 호르초프스키 정도가 19세기풍의 주관적이고 로맨틱한 비르투오시즘을 추구한 레셰티츠키 악파에서 다소 벗어난 이색적인 존재들이었다고 하겠다.


새롭게 선 20세기 피아니즘의 전통

아마도 20세기를 누빈 피아니스트들의 본격적인 시작은 쇼팽의 나라 폴란드부터 살펴봐야 그 순서가 맞을 것이다. 앞서 말한 파데레프스키나 프리드만 외에도 파데레프스키를 사사한 쇼팽의 대가 비톨드 말쿠진스키, 그와 동시대의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 등과 한 세대 전의 명인 요제프 호프만과 레오폴드 고도프스키를 잊을 수 없다. 단정한 조형과 상쾌한 매력을 지닌 음악성으로 높이 평가되었던 요제프 호프만의 얼마 남지 않은 레코드를 들어보면, 이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예민한 귀와 손가락을 가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또 그의 친구였던 고도프스키는 쇼팽의 작품을 포함한 각종 편곡의 명수로도 유명한데,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서정미와 웅대한 효과의 테크닉으로 독자적인 피아니즘을 구축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 마지막 스타일리스트 슈라 체르카스키도 원래 우크라이나 태생이나, 요제프 호프만을 사사했으므로 폴란드 계열에 포함시켜도 좋을 듯하다.

호프만이나 고도프스키와 라이벌 관계를 이루었던 러시아의 거장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였다. 그는 대선배격인 안톤 루빈슈타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스크랴빈 등과 함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다. 흔히 러시아적이라고 하면 선이 굵고 큰 스케일의 음악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거기에 섬세한 뉘앙스와 작품에의 뛰어난 통찰력을 수반한 짙은 표현력이 더해진 것이었다. 이런 전통은 후에도 이어져 미국의 줄리어드에서 활약한 조셉과 로지나 레빈 부부, 러시아에서 많은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낸 알렉산드르 골덴바이저·겐리히 네이가우스·시몬 바레르·레프 오보린, 여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라자르 베르만·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등이 그 자랑스러운 계승자들이라고 하겠다. 이중 시몬 바레르는 오데사 출신으로 호로비츠보다 여덟 살 위인데, 한때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으나 비교적 일찍 숨을 거둔 대가이다. 명교사 펠릭스 블루멘펠트를 사사했으며, 글라주노프는 그를 가리켜 “오른손은 리스트, 왼손은 루빈슈타인”이라 평했다고 한다. 전해져 오는 레코드는 대부분 1930년대의 것으로, 확실히 기교적인 면에서는 호로비츠나 길렐스를 능가하며, 명쾌하고 현대적인 악상도 기억에 남는다. 아울러 바레르는 호로비츠와 더불어 20세기 초 미대륙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피아니스트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서구로 눈을 돌리면 전통이라는 면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나라는 프랑스다. 19세기 말 파리 음악원에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한 루이 디에메의 공적은 매우 크다고 하겠으며, 그후에 마르그리트 롱·알프레도 코르토·라자르 레비·이브 나트·로베르 카자드쉬·블라도 페를르뮈테르·상송 프랑수아·에릭 하이드섹 등이 프랑스적 에스프리를 뽐낸 바 있다. 이중 롱 여사의 교육자로서의 활동과 나트·하이드섹(프랑스인으로는 다소 이색적인)의 베토벤 연구 등은 금세기를 마감하면서 다시금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또한 프랑스 계열로 넣어야 할 인물에 스페인계이며, 풀랑크의 친구이기도 한 리카르도 비니예스와 루마니아 출신의 클라라 하스킬·디누 리파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원숙기에 들어선 라두 루푸도 루마니아 태생인데, 후에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에서는 박하우스·기제킹·켐프와 함께 에트빈 피셔를 언급해야겠다. 원래 스위스인으로 라이프치히 악파의 거두 마르틴 크라우제를 사사하여 독일 음악의 정통을 이어받았다. 그의 바흐와 베토벤 연주는 현대 독일 악파의 하나의 규범이 되고 있으며, 레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그의 연주는 고귀하고 세련된 매너 위에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나타난 피아니스트로는 콘라트 한젠·헬무트 롤로프·한스 리히터·베르너 하스 등이 있는데, 이들의 전통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로는 현재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그 대표격이라고 할 만하다.

오스트리아는 슈나벨 이후 다소 피아니스트의 공백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나 프리드리히 뷔러·브루노 자이들호퍼, 그리고 교육자로도 유명한 요제프 디힐러 등이 연이어 나타났고, 그후 유명한 빈의 삼총사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낙천적인 빈의 전통은 21세기에도 결코 약해지지 않을 전망이다.


신대륙에서 꽃핀 열정과 환희

이탈리아를 포함한 라틴계 피아니스트들의 활동 역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더욱 거세지고 있다. 우선 라틴계를 살펴보면 오이겐 달베르트의 부인이었던 테레사 카레뇨 정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라틴계 피아니스트이며, 남미 출신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던 금세기 초 칠레에서 온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유럽에서 성장하여 성공했다. 그후 알리시아 데 라로차·브루노 레오나르도 겔버·마르타 아르헤리치·다니엘 바렌보임 등이 한 세대 후에 등장했고, 이들의 활약상은 여기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이탈리아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의 존재가 너무 커서 양적으로 조금 모자란 듯한 느낌이지만, 만능 피아니스트인 알도 치콜리니가 건재하고, 현대적인 피아니스트의 전형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바야흐로 대가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어서 든든하다.

이웃나라 프랑스에 비해 화려한 전통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피아니스트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아카데믹한 연주 양식을 고수하고 있어서 호감이 간다. 한때 피아노의 여왕 자리를 차지했던 마이라 헤스·커트너 솔로몬·클리포드 커즌, 그리고 아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대형 피아니스트 존 옥돈 등이 대표격이다. 이중 솔로몬은 20세기 초·중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서정미의 터치와 강철과 같은 테크닉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또 요즘 들어 그 활동이 뜸한 대기만성형의 피아니스트 피터 도노호 역시 발군의 테크닉과 작품을 꿰뚫는 혜안으로 매니어들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다. 미국의 피아노계는 본의 아니게 유럽세에 잠식당한 부분이 있었고, 그 결과 여러 면(특히 우리나라에 소개된 음반)에서 과소평가돼 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떠오른 피아니스트로는 요절한 윌리엄 카펠, 그리고 유진 리스트·유진 이스토민·얼 와일드 등이 있다. 동 시대의 줄리어스 카첸은 유럽으로 건너가 브람스 등의 해석에 이름을 날렸으나 역시 43세로 사망했다. 그후 레너드 페나리오·바이런 재니스·아베이 시몬 등이 기교파로 명성을 떨쳤고, 이제는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게리 그라프만과 레온 플라이셔 등도 이전 세대를 사로잡았던 대가들이다. 또 텍사스의 영웅 반 클라이번을 위시하여 존 브라우닝·어거스틴 아니에바스·미샤 디히터·앙드레 와츠 등도 여전하다. 이들의 영광은 다양한 레퍼토리의 피터 제르킨이나, 갈수록 깊어지는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는 머레이 페라이어 등에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다음 세기 미 대륙에서 울려퍼질 피아노 소리 역시 더욱 더 흥미로워질것이 분명하다.

글·박정준 기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

-- 자료 ; 월간 <객석> 98년 5월호 특집 기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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