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공포로 한창 떨고 있을 때, 뜬금없이 이 책 제목이 떠올랐다.
영화광들은 영화 <세렌디피티> 속 여주가 남주와의 인연을 시험하기 위한 책으로 기억했지만, 케이블에서도 곧잘 틀어주던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내게는 해당 사항 없음.
근데 알고보니 저자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라고? 마르케스...라면 아예 읽기를 포기하고 독서광 친구에게 줘버린 <백년의 고독> 작가 아닌가. 겁이 났다. 포기하자. 내 독서력으로는 어림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갈수록 커졌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 나중엔 의무감 비슷한 게 들 정도. 신종플루로 지구촌이 공포에 떠는 이 시대 지구인으로서 웬지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할까.
그래, 까짓 읽어보자. 빌리면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할게 뻔하니 사자.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이런 망상은 철저히 즐기지 뭐.
아, 읽기를 잘했다. <백년의 고독>에 대한 공포가 새삼스러울만큼 이 책은 책장 넘기는데 부담이 없었다. 스토리 곳곳에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이 지뢰처럼 숨어있다 터지곤 했다.
물론 '신종플루 시대 안전한 사랑법' 같은 팁을 얻을 수는 없다. 남녀간 사랑의 적나라한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 오히려 결국은 이기적이기 마련인 남녀의 사랑에 대한 백신에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면역력이 생길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사실 사랑 면역이라는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간의 면역력이라도 키우길 원한다면, 결국 처절하게 깨지더라도 후회없이 사랑한 후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