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피규어로 만드는 의미불명의 바이러스가 진화하여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가 되어 우주 난자에 인간의 데이터를 쏘아 올리는 이야기.
하도 평가가 좋아서 구매했는데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
현 시대, 즉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독재자들이 주변국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전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보면 의미는 있어 보인다. 이 만화가 97년 11월부터 시작해 2008년에 끝났으니, 거의 30년전에 시작한 이야기지만 지금에도 통하는게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기술은 발전해도 본질은 변하질 않았고, 점점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어 빈부격차가 심해져 탐욕 때문에 인간이 망가지는 것이나 자연재해가 점점 심해지며 기후 문제를 일으킨 국가가 아닌 약소국이 피해를 받고 지원도 받기 힘들어지는 것을 묘사하는 점에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를 뜯어 보면 매우 난잡하다.
1권의 시작을 알리는 클로저 바이러스의 이야기는 클로저 바이러스에 집중하기 보단, 바이러스와 관련된 조직과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그린다. 우한 폐렴이 발발했을 때도 부정적인 인상을 경계해 명칭이 오락가락한 적이 있고, 현재에 들어서 세계보건기구인 WHO가 부패한 상황들이 드러나며 무서울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본래 인간이 만든 조직이 부패하고 헤이해지는건 필연적이라 이 점만 잘 알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집어넣어도 비슷하게 느껴지긴 했을 것이다.
중요한건 이야기로서 클로저 바이러스를 방치한다는 점이다. 그저 인간을 굳게 만들어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게 만드는 위협적인 질병으로 묘사될 뿐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시작을 알리는 이야기가 끝나면 아담과 이브 마냥 여겨졌던 소년이 어느새 마약왕이 되어버리고, 실제로는 인류가 한 10%대 밖에 안 죽었으며, 사이버펑크풍 세계가 되어 여전히 멀쩡히 살아가는 식으로 여전히 위험성은 있지만 별 문제 없는 것 처럼 흘러가며, 이야기는 마약왕의 아들로 시점이 옮겨가 아버지가 유통하는 마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엮이고, 연방의 조직인 프로퍼테일의 수상쩍은 계획과 이에 대항하는 노매드의 대립으로 이어간다.
1권 후반부부터 8권까지 마약왕의 아들 엘리야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종차별이나 탐욕, 음모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고 망가지고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다루며, 엘리야가 어둠의 길을 걷는 것을 그린다.
그 후 클로저 바이러스가 디스클로저 바이러스가 되고, 군상극 형태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도 전쟁과 약탈을 하고 반성과 양보를 하지 않으며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그 상황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을 그리고 그런 내용을 그리지만
뭐 하나 제대로 통일되는 요소가 없다.
1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클로저바이러스는 진화하여 디스클로저 바이러스가 된 후 제멋대로 움직이고, 엘리야는 어둠의 길에 들어서 매춘부를 대신해 복수하는 것과 엄마와 여동생을 찾는 일 어느 쪽도 집중하지 못 한채 이야기에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며, 여러 인종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이 역시도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개로 움직이며 모든게 산만하고 따로 논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하고 약탈하는건 딱히 바이러스 때문도 아니긴 하지만, 바이러스로 시작한 이야기에서 바이러스는 중요했다가 중요하지 않았다가 쓰다가 안 쓰다가를 반복하니 뭘 이야기하자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캐릭터, 이야기, 세계관이 전부 제각각 멋대로 튀어나가고 있다.
그래놓고 이야기 후반부에 들어서면 디스클로저 바이러스는 인간을 정보체로 변화시키는 다음 단계의 진화 형태이며, 디스클로저 바이러스에 흡수된 가족들이 주변에 나타나 결합을 촉구하고, 빈부격차와 고통 받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자진해서 바이러스에 흡수되길 원하고, 클로저 바이러스는 정보를 발사하는 레이저 탑으로 변하여 고중력 버블에 인류의 데이터를 쏘아 올려 새로운 우주로 나아간다는 전개가 되면서도 여전히 이야기는 하나가 되지 못 하고 마약왕의 딸을 구하는 이야기를 끌다 1권부터 8권까지 쭉 진행하고 드문드문 보여주던 엘리야는 이야기에서 빠지고 모습을 거의 보이지도 않던 마약왕이 흐름을 끌고 가는 와중에 뜬금없이 등장한 인물이 중요한 존재라는 등의 흐름으로 빠지니 혼란스럽고 산만하기 짝이 없다.
결말의 마지막까지 그래서 디스클로저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 인류가 무엇을 깨닫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건 없고, 그저 인간이 늘 그래왔듯이 같은 짓을 반복하며 계속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끝을 낸다.
클로저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의 형태를 바꾸었지만, 이야기와는 따로 논 탓에 이야기의 시작을 만들고 마무리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되지 못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충격적인 전개와 흐름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것은 클로저 바이러스가 인류가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에 충격적일 뿐이지 클로저 바이러스가 가지는 의미나 역할이 중요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작중 내내 등장하는 소수민족이나 인종차별, 빈부격차, 중독물질로 망가지는 사람, 살기 위해 매춘을 하거나 범죄조직에 발을 담그는 저소득층, 전쟁, 살인, 약탈, 조직의 부패와 같은 이야기도 충격적이고 현실적이나 이 또한 메세지를 전달하거나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꾸준히 반복해온 일들을 나열 할 뿐이다.
바이러스에 완벽한 항체를 지닌 소년으로 시작한 흐름이 소년은 마약왕이 되고, 그의 아들이 이어받은 이야기가 갈피를 못 잡고 허무하게 무너지며, 다시 돌아오지만 꾸준히 유지를 하지 못 한 탓에 이 또한 쉽게 무너진다. 딱히 이 캐릭터들만 그런게 아니라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 하며 이야기는 중구난방으로 흘러간다. 이야기나 캐릭터나 그게 그거다. 캐릭터들은 많은데 행동원리가 빈약하며 제대로 서술하지 않는다.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보면 이 만화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가 전부 따로따로 놀며 통일이 안 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각각의 이야기,캐릭터가 따로 노는 만화는 보기 힘들 정도다.
일본 창작물 특유의 있어 보이는 느낌을 내기 위해 물에 물탄듯 아무 결론도 내지 않는 마무리도 이 따로 노는 이야기들의 구성을 더욱 의미없게 만든다.
분명 그런건 있다. 지금처럼 혼란스런 시대에서 이런 이야기가 더 깊게 와닿는 부분은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사실적인 사건들에서 느끼는 감정일 뿐, 이야기 전체가 주는 느낌은 아니다. 이야기 전체는 그냥 망가져 있다.
특히 작가가 여러 사실들을 가져다 쓰면서 관찰자 특유의 경험하지 못 한 듣기만 한 사실을 아무 생각없이 쓰는 점에서 이 만화가 더욱 무분별하게 자극적이기만 하고 결론이나 의미를 지니지 못 하는 이야기의 집합이란걸 느낀다. 작가는 디스클로저 바이러스에 융합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선진국가가 많고, 개발도상국처럼 가난한 나라는 적은것으로 묘사하지만, 본디 사람은 자신의 주변 밖에 보질 못 하며, 통계에 들어가지도 못 하는 소외받은 층은 가난할수록 많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도 신안 섬노예나 제주도의 실종 사건들을 뉴스로 보기 전까진 체감할 수 없었고,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는 그걸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국가 행복지수나 안락사 비율을 디스클로저 바이러스에 동참하는 것으로 갖다 붙였는데, 실제로 디스클로저 바이러스 같은 안락사가 가능한 현상이 발생했을 때 각 국가가 어떻게 반응할지, 국가나 민족의 성향과 문화에 따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만화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민간인이 다가갈수 있게 그려졌는데, 제정신 박힌 국가라면 당연히 출입을 통제한다. 국민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국가로서 힘이 쇠락한다는 것인데, 작가가 디스클로저 바이러스를 긍정하기에 허용되는 연출을 넣은거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를 허용 할리가 없다. 수가 적어 탄압받는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그렸음에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라지길 원하는 것을 막는 표현을 그리지 않은 점에서 작가가 겉만 이해하고 본질은 모르는 것으로 느껴진다.
분명 지금의 시대에서 보기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만화다. 다만 그것은 반복되는 인간의 과오를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지, 작품으로서 의미나 메세지를 전달하지는 못 하고 있다. 이야기는 전부 따로따로 놀며, 미증유의 전염병은 사실 병조차 아닌 현상으로 그려지기에 경각심을 주지 못 한다. 팬데믹과 전쟁, 경제 위기, 인간이 나아갈 방향성에 관심이 있어서 보려는 사람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사이버펑크 2077이란 게임을 하며 서브퀘스트, 메인스토리에서 받았던 감명이나 느낌을 이 만화에선 반의 반도 느끼질 못 했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는걸 묘사하지만 메세지를 담지 않기에 와 닿는 느낌이 없다.
사이버펑크풍 세계관의 디스토피아, 밀리터리 SF, 액션을 보고 싶은거라면 그건 괜찮다. 처참하게 썰려나가고 죽어나가는 인간들이 과하게 많이 그려지긴 하지만, 액션물로서는 볼만하다.
이 작품을 추천 하느냐는건 좀 미묘하다. 과하게 기대를 갖지 않는다면 무난하다. 허나 기대를 빼고 본다 해도 이야기가 좋지 않다보니 내 기준에선 추천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