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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빈님의 서재
  • 옥중 19년
  • 서승
  • 12,420원 (10%690)
  • 2018-04-03
  • : 376

책 한 권이 재출간되었다. 『옥중 19년』.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역사적 해원을 시작한 제주 4.3 항쟁 70주기에 맞췄다. 그리고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성실성의 귀감이 되었던 ‘진실의 힘’ 출판사가 애를 썼다. 참고로 4월 3일은 저자의 생신이기도 하다.

 

서승 선생은 ‘세계의 양심수’, ‘제 3세계 민중운동의 상징’,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의 주범’ 등으로 규정되는 ‘거물’이다. 하지만 내겐 심각한 이야기를 매우 심상하게 하고, 농담을 하고 짐짓 시치미를 뚝 떼는 개구진 동네 노인 같은 분이다. 재출간의 의미를 ‘일상 속에서 다분히 엷어진 영혼을 흔드는 감동’ 정도로 규정한 것도 농담이리라. 벼락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같잖은 서평을 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매우 마땅치 않다. 그저 선생님과의 인연 한 자락을 적는다. 2018년 2월, 교토에 세 번째 윤동주 시비가 세워졌을 때 교토를 찾았다. 일행 중 한 분이 교토 교외에 있는 이모의 묘소를 찾고 싶다고, 일정을 일부 조정해 줄 수 있는지 상의를 해왔다. 그러면서 사촌오빠가 오기로 했는데, 혹 알지 모르겠다며 서승 선생의 존함을 이야기했다. 선발대로 와 3일 동안 퍼마신 술이 한꺼번에 깰 정도로 깜짝 놀랐다.

 

선생의 집은, 그리고 선생의 어머님 묘소는 아라시야마에 있다.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가 제방을 쌓고 고도 교토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곳, 메이지 시대 때부터 귀족의 휴양지로 유명했다던 그곳은, 아름다웠다. 북한강 어름의 유원지를 방불케 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악다구니 속에서 선생을 처음 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던가.

 

교토 곳곳을 돌며 동주의 윤리적 성찰, 몽규의 실천적 투쟁, 그리고 지용의 미학적 저항을 이야기했다. 일정을 마치고 불빛이 따뜻했던 호스텔 카페에 모였을 때, 낮에 보고 공감했던 그 모든 것의 총체적 진실인 양, 선생님이 오셨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우리를 멋쩍게 할 만큼 소탈하신 모습으로 대해주셨다. 당신의 얼굴과 손에 고스란히 남은 상처를 이야기할 때도 결코 과장됨이 없었다.

 

내게 선생은 푸름이다. 2월임에도 유난히 따뜻했던 아라시야마, 푸른 아지랑이산[嵐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 숲을 품고 또 다른 푸른빛 강물로 에워싸인 그곳으로 기억된다.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을 지키며 식민지 모국 교토에서 공부했던 청년 윤동주, 청년 송몽규, 청년 정지용처럼 말이다.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은 매우 사적이고 소략하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어쭙잖게 고전을 해설한 책을 낸 적은 있지만 나는 아직 선생과, 선생의 삶과, 선생의 책을 객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서적,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평가’는 책에 실린 네 분의 글을 빌리는 것으로 가름한다.

 

‘목적은 뚜렷하고 사건은 허위일수록 고문은 잔혹해진다.’

- 임헌영

 

‘우리는 침묵하고 방관하고 외면해오지는 않았는가.’

- 박원순

 

‘눈물 한 방울 보내오지 않으시고 소리 없이 돌아가신 서승의 어머님께 역사의 양심은 고개를 숙일 것이다.’

-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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