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의 신사>의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단편집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두 도시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읽었던 <모스크바의 신사>에 푹 빠져서 한껏 기대를 하고 읽었고, 단편이 주는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찜통에 들어앉은 것 마냥 숨이 턱턱 막히는 일요일 오후에 남편과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반대편으로 유모차가 보였다. 아이 엄마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유모차에 더 어린 아이를 태워서 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나보다 백 배는 더 더워 보였고 자연스레 힘들었던 내 육아가 떠올랐다.
“그래도 저 때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덜 힘들었는데…” 남편도 과거를 떠올렸나 보다. “아니, 난 그래도 지금이 더 좋아. 힘든 건 항상 있는 거고 지금은 지금의 좋은 것들이 있잖아. 이렇게 당신이랑 둘이서 운동도 가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위로와 힘이 되어준 서로에게 우리가 한 것은 책에서 만난 문장처럼 다 괜찮아질거라는 듯 서로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닐까. 암담한 구덩이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생각을 건져 올려 줄 가느다랗고 빛나는 줄처럼. 어떤 거창한 것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지 않나.
더운 날 아이 둘을 겨우 재우고 함께 마시던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그때의 갈증을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일곱 편의 이야기는 드문드문 떨어진 점들이 어느새 하나의 선이 되어 머릿속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 과정은 결코 과장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지만 강렬한 여운으로 남아 일상에서 문득 그 문장들이 떠오르게 한다. 내가 살고 바라보는 세상이 신기루가 되지 않도록 더 지금을 또렷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음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결국 테이블을 두고 서로 마주 했을 때 자기 삶에 나타난 새로운 사실과 직면한다는 저자의 말 또한 곱씹게 된다. 어떤 문제를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는데 직면하는 것에 용기를 내어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그것을 어서 테이블에 올려 놓을 날이 오기를.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셨다면 그의 단편들을 꼭 만나보시길. 혹시 읽지 않으셨다면 단편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에이모 토울스를 만나는 좋은 시작으로 추천 드려요.
다정하고 줄 잘 서는 푸시킨과 작가가 되고 싶은 티모시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우아한 연인>의 이블린 로스의 새로운 이야기인 <로스앤젤레스>는 스릴러 느낌었고요. 아직 읽지 않은 <우아한 연인>구매했답니다.
@hdmhbook 현대문학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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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가 다시 베개를 베고 누운 뒤 나는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때로는 우리에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암담한 상황이라 해도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달래듯이 누군가가 머리에 쪽 입을 맞추는 것. 내가 최소한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10분 뒤면 나는 곤히 잠들겠지만, 토미에게는 아주, 아주 긴 밤이 될 테니까.p.217
살다 보면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을 때가 많은데, 그런 교훈을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끝내 배우지 못하는 교훈 중 적어도 절반은 마음만 달리 먹으면 쉽사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찰력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생긴다. 그때는 새로운 교훈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찬란함을 받아들일 시간도 기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낸 무지 속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이다.p.435
“착한 마음으로 입을 다문 사람들이 지금까지 제 인생을 가득 채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입을 다물었든, 그건 모두 일종의 거짓말이었어요. 난 이제 그런 건 질렸어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아무리 추악해도, 불편해도, 신경에 거슬려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듣고 싶어요. 시선을 피하고 싶은 일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냥 신기루가 되어버리니까요.”p.575
살다 보면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을 때가 많은데, 그런 교훈을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끝내 배우지 못하는 교훈 중 적어도 절반은 마음만 달리 먹으면 쉽사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찰력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생긴다. 그때는 새로운 교훈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찬란함을 받아들일 시간도 기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낸 무지 속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이다- P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