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cream3421님의 서재
  • 밤새들의 도시
  • 김주혜
  • 17,820원 (10%990)
  • 2025-06-13
  • : 14,065

#협찬도서 #밤새들의도시 #김주혜 #김보람_옮김#다산북스


발레 슬리퍼를 신자 발에 생생함과 기민함이 돌아오며 바닥과 연결되고, 무릎뼈가 들리며, 골반이 열린다. 어깻죽지가 편편히 펴지고 당겨져 내려가며 목은 길고 곧게 선다. 엄청난 안도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촛불이 어느 바람 한 줄기에 확 커졌다가 다시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나도 순간 나란 존재를 다시 알아본다.p.42


2년 전 사고를 당해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레오노바(나타샤)가 자신이 추락했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객차처럼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서로서로 반투명하게 겹쳐져 있다. 몇 년전의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게 가깝게 느껴지고, 내일은 몇 년 뒤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p.19

어릴 적 처음 발레를 했던 순간, 높이 날아올라 점프하던 순간의 자유로움을 느꼈던 그 가슴 벅차오르는 기억, 함께 발레를 했던 니나, 소피아 그리고 세료자와의 기억은 위의 문장들처럼 겹쳐진 기억들로 나탈리는 어떤 기억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툭툭 튀어나오는 이야기들로 나타샤의 현재와 과거를 따라가 본다. 현재 그녀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약 없이 잠이 들 수 없고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린다.


잠이 들고 나면 검은 새들이 나타나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깃털이 내 눈, 목, 등에 부대끼며 내 숨통을 조인다. 이른 봄, 굳은 땅을 뚫고 나오는 크로커스처럼 깃털이 내 살갗에서 터져 나온다. 내 팔은 날개가 되고, 내 입술은 딱딱하게 굳어서 부리가 된다. 날아보려고 애쓰던 나는 결국 영겁하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검은 깃털을 흩뿌리고 소용돌이를 그리며 하염없이 추락한다. p.120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기까지 그녀의 여정은 앞만 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홀로 남겨지지 않으려 먼저 떠나는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면서 성공만 바라보고 자신을 모두 갈아 넣어 발레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것이 자신을 소모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던 중 찾아온 사랑, 사샤와 파리에서 화려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녀는 또다시 혼자임을 느끼게 된다. 러시아에서 파리로 이어진 그녀의 발레 인생은 계속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그녀는 거침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


엄마와의 소원한 관계, 누구인지도 몰랐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사랑했던 사샤의 배신, 삶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 극단 내의 정치적 관계에 더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예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나타샤는 발레리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술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날아오르는 자유를 통해 그녀는 예술로서 승화 되는 반면 무대 뒤에 모습에서는 허망함을 느끼는 한 인간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 예술인으로서의 삶에서 자신이 이룬 것을 관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책장을 넘겼다. 겹쳐진 듯 흐릿한 그녀의 삶에서 함께 답답함을 느낀 건 어쩌면 내 모습이 비쳐서 일 것이다. 삶과 예술을 떼어낼 수 없었던 그녀처럼 나 역시, 그리고 우리 모두 삶과 떼어낼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시 돌아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지젤>을 맡은 그녀는 과연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까? 한 여자의 삶을 따라가면서 같이 웃고, 절망하고, 가슴 설레고, 답답해하며 소설을 읽었다. 발레는 잘 모르지만 발레를 향한 나타샤의 열정에 어느새 취해 사샤를 욕하고 드미트리를 미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없을 깨닫게 해주는 친구 다정한 니나와 스베타 이모에게도 애정이 느껴진다.


“오늘은 점프할 수 있을까?” 라며 불안해하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나타샤에게 다정한 위로를 보낼테다.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그녀를 떠올리며 <지젤>을 검색해서 들어본다.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행운의 메시지를 보낸다.


토이,토이,토이!


우리는 서로 손을 꽉 잡고, 씩 웃는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비극은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의 간극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꼭 말하고 싶은 건, 그 간극이 대부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p.500


아무리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도 끝이 있는 법이다. 사실, 위대하려면 반드시 끝나야 한다. 그러나 삶에는 결코 끝이 없다. 한 가닥의 실이 매듭지어지고 다른 가닥이 끊기더라도, 영원히 흐르는 음악에 맞춰 계속 엮이며, 오로지 무한대의 높이에서만 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p.519


*출판사에서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ekida_library

@dasanbooks


#톨스토이문학상 #야스나야폴라냐상 #책 #영미문학 #책추천 #hongeunkyeong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