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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m3421님의 서재
  • 스물두 번째 레인
  • 카롤리네 발
  • 15,750원 (10%870)
  • 2025-05-16
  • : 990

#도서협찬 #스물두번째레인 #카롤리네발 #전은경_옮김 #다산북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들어가기 무서웠고 두려움은 나를 배회하게 했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이었을까. 배가 고팠고 아파트 관리실 뒤쪽엔 내일 배달할 우유 박스가 항상 있었다. 집에 못 들어 가서 배가 고팠던 나는 어느 날 우유를 훔쳤다. 누가 볼까 봐 우유를 들고 한참을 뛰어서 놀이터 구석에서 몰래 삼켰다.


나쁜 기억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나는 스스로 내 기억들을 지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방어기재 라고 여겼고. 그런데 틸다를 보고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나쁜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이 두려웠던 나,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이 두려웠던 나, 숨을 곳이 없는 숨 막히는 공간이었던 집. 그때의 내게 집이란 따뜻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고 집안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만큼 민감하다. 아직도 싸늘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보는 편이다.


알콜 의존에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엄마. 대학을 다니면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해결하는 ‘틸다’와 어린 여동생 ‘이다’. 틸다는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기 전 수영장에 들러 레인을 스물두 번 도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대도시에서의 대학 박사 과정 지원을 권하는 교수의 말에 틸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다 혼자서 불안정한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틸다는 동생을 남겨두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갈등한다.


마를레네와 이반, 틸다는 단짝 친구로 함께 지내던 어느 날 이반이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틸다는 상실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연히 수영장에서 만나 시작된 틸다의 사랑의 상대는 이반의 형 빅토르이다. 그 역시 가족의 상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이 둘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데…


과연, 틸다는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나쁜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두뇌에서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 등 나쁜 기억을 담당하는데 나쁜 기억은 건망증과 인지 장애를 앓더라도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지속력을 갖고 있다고. 그런 나쁜 기억을 없애는 것은 어렵고 좋은 경험으로 좋은 기억으로 왜곡해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나의 두렵고 어두웠던 나쁜 기억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은 좋은 기억들-주변의 친구들, 나의 반려자-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라도 단단해진 마음으로 떨쳐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노력 중이다.


틸다와 이다가 가진 나쁜 기억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일어날 좋은 경험으로 왜곡되길 바란다. 누구도 어떤 아이도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까.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은 조금만 버텨보라고,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나만의 레인을 하나 가져 보라고 권한다. 내가 힘들었던 시절 숨어 지내던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고 방과 후에 꼭 들려서 책을 빌려와서 읽곤 했으니 나의 레인은 책인 셈이다. 책으로의 도피는 나를 살아 있게 했고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의 모든 틸다와 이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나도 그랬어. 너도 꼭 괜찮아 질 거야.” 라고.


*출판사에서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 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ekida_library @dasanbooks

#책 #책추천 #성장소설 #독일문학 #책리뷰 #hongeunkyeong


여기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다. 여기 위에서는 아래의 모든 것이 너무나 작아 보인다. 여기 위에서 보면 엄마는 진분홍 하늘에서 철새 떼가 동시에 남쪽으로 출발해도 아무 관심도 없는, 수많은 작은 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여기 위에서는 어떤 점이 술을 마시는지 주스를 마시는지, 뭔가를 마시기나 하는지 알아볼 수 없고 그 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도 없다. 점은 그저 점일 뿐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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