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공감의 영역에서 만났다면,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는 멈춤의 순간에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면, 그건 실제 사건과 경험이 같거나 유사해서가 아니다. 나도 그 인물처럼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는 실존적인 이해다. p.206
<선릉 산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빠져든 정용준 작가님의 산문이 새로 출간되었다. 다양한 이야기거리들을 저자의 시선을 따라 읽으면서 어느새 깊이 빠져들게 된다. 새벽의 조용함에 젖어보기도, 고소한 두부를 구워 한입 가득 음미해보기도 하면서. 야금야금 읽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산문집이다. 아껴서 야금야금 읽었다.
한 편을 읽고 다시 읽어본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문장에 눈이 가고 또 인덱스를 붙인다. 지나온 이야기들 속에 나의 과거를 반추하고 지금의 문장엔 현재의 나를 슬며시 대입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는 그의 글을 읽을 기쁨에 미리 가슴이 설렜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라는 세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에 숲과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고 인간의 감정과 감각에 바람과 별자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p.71
뒤늦게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게 소설을 읽고 쓰는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 가슴속에 와 닿았다. 누군가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깊이가 없고 가볍다 했는데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 이유는 나와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가의 직접 경험이 아니라서,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과연 그럴까.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말 그 사람이 되어 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소설을 읽고 이야기에 나는 빠지게 된다. 소설의 깊이는 모르겠고 나는 깊이 빠지는 편이다. 내게 무대를 선사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창구로서의 소설은 이미 깊디 깊다. 그곳에 줄을 긋고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바로 “리얼 월드!” 아닌가.
성장은 날과 달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깨달음, 선택과 포기, 후회와 어리석음의 흔적으로 각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p.54
뫼르소에게 나는 배웠다. 타인의 인정이나 보증을 필요치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삶에 절실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p.279
@jakkajungsin 작가정신의 작정단13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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