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맛보는 다문화 체험을 목적으로 저자는 15년간 타지 생활을 하면서 동남아시아 친구들과 만들어 먹었던 가정식, 현지 조사 및 출장 때 반드시 찾았던 음식들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개 된 음식은 저자가 직접 먹거나 만들어 본 것이고, 되도록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정했다고 한다.
-차례
1부. 개성이 담뿍 담긴 천연의 맛: 샐러드 이야기
2부. 이주민의 애환이 담긴 고향의 맛: 국수 이야기
3부.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아시아의 맛: 볶음밥 이야기
4부. 세계를 사로잡은 소스와 향신료의 맛: 한 그릇 요리 이야기
5부. 아시아를 닮은 행복의 맛: 디저트 이야기
다양한 음식들의 소개 중 각 나라들이 음식의 종주국 논쟁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원조’를 둘러싼 나씨고렝 종주국 논쟁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사이에 잊을 만하면 재점화하는 ‘김치 논쟁’처럼 말이다.
원래 하나였던 문화권이 제국주의로 인해 분리되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중국 남부에서 시작된 볶음밥을 화교와 화인들이 동남아시아로 가져왔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면서 나씨고렝의 현지화 과정에는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남아시아의 국경선이 분명해졌고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브랜드 파워’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어 음식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소프트 파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소프트 파워’인 음식이 주목받으면서 비슷한 음식을 공유하는 문화권 내에서 ‘고유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것이 종주국 논쟁으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식 나씨고렝이 더 전통적인지 말레이시아 식이 더 ‘진짜’에 가까운지 말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서 어떤 것이 진짜 나씨고렝인지가 아니라 이런 질문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하고 묻는다. (p.141~151 발췌)
한 나라, 혹은 한 공동체의 음식은 그들이 속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음식 문화는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그렇기에 음식과 사람, 그들이 속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음식의 기원과 종주국을 가려내는 일보다 중요하다. (p.226)
19세기 후반 영국 통치하에 산업화를 경험한 미얀마에서 모힝가는 노동자 계급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2차 세계 대전과 일본 점령을 겪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동안 대중화되었다고 본다. 워낙 사랑을 받은 탓에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간 영역 활동을 강력히 통제했지만, 모힝가 식당과 제조업체들은 허가를 내주어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힝가는 메기 같은 민물 생선을 끓여낸 육수에 레몬그라스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를 넣고 맛을 낸 뒤 쌀국수를 넣어 만든 요리다. 뜨거운 국물 요리 모힝가는 미얀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리고 가장 많이 찾는 아침 식사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이고 집에서도 만들어 먹기도 한다. 19세기까지는 요리책에서 찾아 볼 수 없던 서민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미얀마에 가면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5대 음식 중에 하나로 명실상부한 미얀마 국민 음식이 되었다. (p.222~224 발췌)
군부 쿠데타로 인한 독재와 내전으로 무고한 희생을 치르고 경제 위기로 나라 전체가 휘청 거렸던 미얀마. 그런 미얀마 사람들의 속을 채웠던 소박한 음식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책 속 많은 아시아의 음식들이 훌륭하고 맛있어 보이고 그들 나라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는데 미얀마에 이르러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민주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음식을 보면서 ‘12.3 내란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그들의 음식에 대한 이해가 궁극적으로 그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미얀마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음식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그들의 민주화 노력이 결실을 보는 데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는 원동력이 되듯이 말이다.’(p.227) 정치적 위기와 경제 위기에 가려진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그들의 음식인 모힝가를 그들의 나라의 거리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우리도 우리의 일상이 점거된 채 알려지지 않고 차단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음식을 먹어야 사람은 산다. 살아야 음식을 먹고 음식은 곧 그 사람의 삶이 된다. 그런 개인의 삶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문화가 되듯 우리의 민주주의로의 문화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hanibook 한겨레출판사의 하니포터9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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