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유전자는 태고의 바다에서부터 온 거야. 너는 모든 진화를 거치고 모든 생명을 다 거쳤어. 지구의 역사와 함께해왔어. 태고의 영혼이 모두 네 몸에 남아 있어. 그때부터 살아온 전체가 다 너야. 자신을 함부로 하찮게 여기지 마.” (p.257)
대한민국 서울의 연남동에 자리한 마구니, 제주와 광주의 현대사들을 통해 오랜 시간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한 욕망이 인격화된 카마를 조명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의 사건들의 배후에, 사람 마음속에는 카마가 있었다.
모멸과 상처는 그 세계를 겨누는 칼이 되어 세상을 모멸과 멸시로 덮어 서로를 상처 내고 악으로 치닫게 된다. 누구나의 마음속에 가진 어두운 욕망이 마구니가 되고 그것을 조정하는 마구니 ‘두억시니’가 있다.
*카마 -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망이나 갈망이 마력으로 인격과 형상을 얻어 생겨나는 일종의 요괴이다. 사람의 마음이나 집단의식에 거주하며 이들이 마구니와 계약하면 마구니의 군대가 된다. 그러므로 마구니는 세력 확장을 위해 카마의 수를 늘리려 하고, 퇴마사는 이를 막기 위해 그 수를 줄이려 한다.
*마구니 – 카마를 군대로 부리는 군주이자 욕망의 화신. 마군으로도 불리며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소원을 들어준다’고 유혹하여 카마를 만든다.
*두억시니 – 모멸을 욕망의 동력으로 삼는 심소 카마. 사람이 받은 모멸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돌려주고, 그래서 생겨난 모멸을 양분으로 자라난다. 상대가 쓰는 기술으르 복사해서 되돌려주며,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모멸에 사로잡히게 된다. 몸의 각 부분이 따로 살아 있고, 신체를 변형하여 회복한다. 심소가 사라져도 마음의 모멸을 따라 장소를 옮겨 다시 살아난다. 물리칠 방법이 실상 없으며, 교단에서는 접촉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소년 수호가 퇴마사가 되는 과정에서 만난 퇴마사들-마호라가 (선혜), 진 (아난타)-과 사람의 마음속 ‘심소’에 들어가 그곳에 든 마구니를 퇴치하고 그들을 부리는 두억시니를 추적한다. 두억시니가 이렇게나 무서운 존재였다니!!! 수호의 마음속에 든 카마인 바루나의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고 전투씬은 그래픽을 보는 듯 화려하게 머릿속에 펼쳐진다.
퇴마사로 성장하는 수호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졸이고, 다양한 형태의 인간 마음의 속에 든 카마들을 보면서 크고 작으며 악하기도 혹은 미약하기도 한 각기 다른 욕망에 모두 이름이 있다는 것. 그것은 백년 전이나 천년 전에도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음에 서늘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어제 밤 그것을 목도하기도 했고.
환생, 전생의 기억, 불교의 사천왕, 하늘을 나는 용, 사방위의 신들, 마구니, 카마, 두억시니. 그냥 읽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들이 「스페셜 가이드 북」이 있어서 한층 재미를 더했고 작가와의 대담으로 무려 8년간의 긴 집필 기간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음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였던 철거 용역, 젠트리피케이션, 가정 폭력, 학교 폭력, 정상 가족 프레임 등을 다루어 더욱 한국적인 판타지 소설이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퇴마사들의 장애 혹은 상처에서 무기가 생성되는데 생각하는 대로 무기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 지기도 하는 무한대의 능력치를 가져서 놀라웠다. 안 그래도 발목을 다쳤는데 무기가 나오면 좋겠다는 상상에 살짝 잠겨보기도.
현실에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속 심소에 있는 카마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디에선가 퇴마사가 짠! 하고 나타난다면 인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려나.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2024년이 아닌 2015년 연남동 그 어디쯤을 걷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힘들었던 것들은 ‘어두운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있어서였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를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세계 말고 어딘가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꿈꾸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 <사바삼사라 서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