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는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청탁받아 여러 작가와 이 주제로 소설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기존의 <월급 사실주의> 작가님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작가님을 섭외해 열 네명의 소설가가 참여하는 앤솔러지를 내게 된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은 짧은 소설들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두려운 마음에 절망하기도, 혹은 희망을 보기도 했다.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 해답의 방향은 달랐다.
최근 11월에 수학능력시험이 끝났고 아직 입시전쟁 중이다. 고3 수험생들이 있는 집은 감히 먼저 대입 결과를 물어보지도 못하는 이런 풍조는 왜 생겨났을까. 책 속 <대치골 허생전>에서 허생은 ‘사교육과 경쟁 교육의 폐단’으로 골머리를 앓던 예조참판 이완에게 절대 평가 제도와 대입 제도 개편의 방편으로 입학과 편입, 전과가 쉽게 하고 반대로 졸업이 어렵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을 받고 다음 날 다시 가보니 허생은 사라지고 없는데,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꾼 듯하다.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하루 아침에 수능 출제를 뒤바꾼 대통령의 한 마디처럼.
자신이 입시를 경험해 보거나 아이를 키운다면 누구나 교육 제도에 불만이 있을 텐데 왜 바뀌지 않을까. 힘들어하면서도 어느새 따라갈 수밖에 없는, 나 혼자 모난 돌이 될 수 있는 용기는 생기지 않고 그러니 아이들은 등 떠밀리고 있다. 경쟁 속에 던져진 아이들은 갈수록 치열해져 성적 우선주의에 인성 교육은 사라진 지금 곳곳에서 펑펑 터지는 학폭들. 나도 경험했는지라 부모로서 속이 타들어 가고 눈에서 불이 켜질 지경이었다.
열 네 명의 작가들은 이대로 둘 거냐고 아이들은 이런 마음인데, 이렇게 되게 진짜 할 거냐고 묻는다. 물음은 짧지만 강렬하고 깊은 고민으로 빠져들어 내 생각을, 내 행동을 둥글리게 한다. 그래, 뾰족해지지 말자. 둥글리자, 둥글게 둥글게. 그래야 사라지는 아이 없이 살 수 있을 테니.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입시 컨설턴트들은 킬러 문항을 죽인 존재라는 의미로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바로 그런 정부를 죽이는 존재라며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소개했다. 사교육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 (p.33)
“대한민국이 자주 그래.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발표하고 다 같이 뭉개지. 그런 풍토를 이해하고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다.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pp.36~37)
<민수의 손을 잡아요>
“의사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잖아요. 전 수학이 너무 싫어요. 엄마가 이름은 수인데 수감각이 없다고 막 뭐라 그랬어요. 수학 응용 편 문제집 푸는 거 세상에서 제일 끔찍해요. 영어 월말 테스트 준비도 밤 12시까지 했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싶었어요.……사라지고 싶었어요.”(p.149)
<지옥의 온도>
아빠한테 물려받은 머리를 가지고 쓸데없는 짓이나 하려는데 내가 참을 수가 있니?
참아주셔야 했어요. 기다려주셨어야 했어요.
뭐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상대가 실패하고 방황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백, 그게 사랑이래요. (p.172)
<우리들의 방과 후>
“사춘기라는 말 너무 짜증 나지 않냐.”
30분 전에도 서진과 효우는 탕후루를 오독오독 씹으며 짜증 나, 뭐만 하면 사춘기 때문이래,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어, 하고 투덜거렸다.
“요즘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하는 얘기도 그거야.”
서진은 사춘기라서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공부와 상관없고 해답이나 정답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학교나 학원 모두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p.209)
<김남숙>
사랑은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뜨거운 것, 거친 것, 부딪쳐 이겨내는 것. (p.218)
우리 중에 몸과 마음에 병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p.224)
@hanibook 한겨레출판사의 하니포터9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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