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거기 있나요?>
“잘 있어요.
나는 이제부터 살아갈게요.”
남편 도시로에게 메모를 남긴 데루코는 45년의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왔고, 실버타운을 도망치듯 나온 루이와 나가노로 떠난다. 남편의 BMW를 끌고.
중학교에서 처음 만난 데루코와 루이는 올해 일흔이 되었고, 다시 만나서 친해진 지는 40년이 된 친구 사이다. 남의 별장에 무단으로 들어가 5개여 월을 사는 동안 마을에서 일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나누며 그들은 자유로운 삶을 만끽한다. 일도 하고 서로를 돌보며 사는 삶은 하루하루가 선물 같다.
-데루코가 ‘가출’을 ‘결별’로, 누구 ‘때문’을 ‘덕분’으로 바꿔 말하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경험을 했다.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마법을 부리는 데루코는 루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서로 같이 있어서 좋은 존재, 서로의 눈을 보면 어떤 생각 하는지 아는 사이. 그들을 ‘친구’라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오롯한 나 자신을 찾고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키를 잡는다. 함께 떠난 둘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다. 누군가의 눈치 보지 않는 삶,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진짜 언니들이 삶이다.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할 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물론 심장은 항상 뛰고 있었겠지만, 지금 처음으로 심장이 뛴다는 것을 인식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도 루이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좋은 기운이 몸속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p86~.87)
여자들끼리 떠난 여행은 즉흥적이었고 갑자기 기차표를 예매하느라 각자 분주했다. KTX를 타고 강릉 당일치기라니! 남편에게는 말하지도 않고 표부터 얼른 예매했다. 그만큼 설렜다. 새벽에 탄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안에는 흥분과 기대로 가득한 우리가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서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이란!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오는 이 바다를 그동안 왜 못 왔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함께 해변을 걷고 또 걸으면서 나눈 얘기들은 그 청량한 바닷바람처럼 우리를 까르르 웃게 했고 같이 먹었던 밥은 그 어떤 식사보다 맛있었다. 바닷가의 그네에 앉아 바라보던 바다와 해변의 등대를 뒤로 함께 찍은 사진을 슬쩍 열어본다. 아, 나 웃고 있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떠날 수 있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루이에게 열쇠가 되어 준 데루코처럼 서로에게 열쇠가 되어 준 우리들의 만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다시 강릉의 바다를 함께 걸을 날을 손꼽아 본다.
데루코는 때때로 열쇠가 된다. 그 열쇠로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곳, 가본 적 없는 곳, 가고 싶어도 못했던 곳, 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곳으로 갈 수 있지만, 그 열쇠는 내가 보이지 않는 척해왔던 곳으로 통하는 문까지 스르륵 열어버린다. (p.164)
도서 지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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