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쩍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사진 찍기가 왜 좋아?”
“보이는 것을 내 마음대로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나만의 사진이 되니까.”
아이를 바깥으로 나가게 한 건 사진이었다.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게 유행이었는데 아이는 관심을 가졌고 마침 집에는 오래된 DSLR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를 손에 든 아이는 눈에 띄게 변했다. 한강공원으로 성수동으로 집 근처 강으로, 능소화를 찍으러, 일몰을 찍으러 밖으로 나갔다. 집안에만 있던 아이를 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진기 안에 보이는 것을 찍고 다시 들여다보고 편집하는 모습은 낯설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기쁜 마음 가운데 문득 어떤 일에도 쉽게 익숙해지는 건가 하는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피사체를 찍는 것.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을 그 순간의 모습으로 남기는 사진을 우리는 기록용으로 주로 찍는다. 맛있는 음식이나 자연 풍경, 모임 때 등을 휴대폰으로 찍고 가끔 열어보고 추억에 잠기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런 사진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니. 단편 <빛의 호위>에서의 나와 권은의 이야기가 확장되어 <빛과 멜로디>가 나왔다. <로기완이 있었다>로 이미 작가님에게 홀딱 반한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구매했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전쟁은 가슴 아프지만 먼 나라의 이야기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이곳의 안락함 속에 잊고 있었던 그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추웠고 아팠으나 다정한 호의가 담긴 손이 나를 살렸고 나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계속 전해지는 방법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국적과 나이대가 모두 다른 이들이 서로에게 내미는 ‘호의’는 약한 빛이지만 퍼져 나갔다. 누군지 모를 이에게도 그 빛은 공평하게 퍼져나가고 그 빛과 함께 멜로디는 계속 흐른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아니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 뭐든 쉽게 잊는 무정하도록 나태한 세상에 타전하고 싶다는 마음, 그들을 살릴 수 있도록, 바로 나를 살게 한 카메라로……(p.86)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고 싶으니까요.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히지 않게 하는 사진을 찍는 거, 그게 내가 사는 이유예요.”(p.128)
전원 스위치라도 켜진 듯 갑자기 빛을 발하는 별이 있는가 하면 수명을 다해가는 전구인 양 깜빡이는 별도 있었으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별과 속절없이 추락하는 별도 있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추정이 무의미한 먼 과거를 떠도는 별들이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지구의 밤하늘에 도달한 저 별빛들이 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아픔은 결국 다 사라질 것만 같다는 낙관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밤……(p.171)
알마를 살린 장 베른의 악보와 권은을 방에서 나오게 한 카메라는 결국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둘은 다른 사랑이지만 같은 사랑이기도 하다고, 한 사람에게 수렴되지 않고 마치 프리즘이나 영사기처럼 그 한 사람을 통과해 더 멀리 뻗어나가는 형질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pp.223~224)
덧, 코멘터리 북이 있는데 꼭 같이 읽어보길 추천한다. 작가님의 에세이와 인터뷰도 실려 있다.
#빛과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장편소설 #책 #책추천 #hongeunkyeong
전원 스위치라도 켜진 듯 갑자기 빛을 발하는 별이 있는가 하면 수명을 다해가는 전구인 양 깜빡이는 별도 있었으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별과 속절없이 추락하는 별도 있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추정이 무의미한 먼 과거를 떠도는 별들이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지구의 밤하늘에 도달한 저 별빛들이 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아픔은 결국 다 사라질 것만 같다는 낙관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밤……-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