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품고 있기에,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과 사랑에 대해, 즉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주 여행이 가능해진 세계인 ‘카두케우스 이야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하는 재난 상황을 바탕으로 한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두 챕터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주 단위에서 전개되는 ‘카두케우스 이야기’도, 재난이 닥친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세계도 현실의 세계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상상력이 가미된 가상의 세상이다. 그렇지만 이 두 세계에서 나는 현실과 놀랍도록 닮은 모습들을 발견한다.
‘카두케우스 이야기’에서는 우주 여행이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도약’이라 불리는 초광속 비행 기술을 독점한 회사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의 독점을 떠올리게 된다. 기술과 권력을 독점한 주체에 의해 자신의 역할과 한계가 정해지고, 수명이 다한 행성에서 태어나 ‘이주’를 해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꼭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의 약자들과 닮아 있다.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세계는 코로나 19를 겪은 우리에게는 이제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다. 재난 상황 속 보건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SF 이야기에서 상상으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중 현실과 가장 닮은 부분이라면 역시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꿈을 두고 떠나야 하더라도, 평생의 꿈을 포기하더라도 타인을 구하려는 마음(<이사>, <재회>), ‘우주인’으로 태어난 아이가 척박한 행성의 한계를 넘어 우주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돌먼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비 온 뒤>), 곁에 함께 있지 않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미정의 상자>),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지도 위의 지희에게>), 몇 번의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단 한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현숙, 지은, 두부>)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 이 모든 마음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SF라는 광활한 상상력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정의 상자>는 SF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다양한 변주의 세계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래빗홀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하지만 더없이 간절하게, 내가 이 아이에게 처음이 아니기를 기도한다. 이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를 잃어야 한다면, 비명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잔상처럼 눈가를 떠도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때가 온다면,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내가 누구에게도 처음이 아니길.-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