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 고통을 직시하는 법.
밤 2024/09/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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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계
-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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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4-08-09
: 1,924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해."
몇 장 되지도 않는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다. 자극적인 날것의 묘사들로 이루어져 읽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단편들 속의 그 모든 끔찍한 묘사들이 바로 현실의 여성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깨지지 않는 단단한 가부장제의 신화 아래서 여성들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안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 계급과 성별에 묶여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받아내야만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에는 너무 어리고 미숙하고, 그 미숙함을 이용하려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투계‘가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계‘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단편들 속의 여성들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함께 겪어내는 듯했다. 그 흡입력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인공적으로 직조된 세계 속에서 현실과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우리 현실을 반추하게 한다. 창조된 세계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찾아나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공포와 경이로움’를 통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장 강렬한 단편은 표제작인 <투계>였지만, 어쩐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편 <알리>였다. <투계>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면, <알리>는 그 무엇 하나 확실히 말하지 않음으로써 짙은 잔상을 남긴다. 상냥한 알리 아가씨가 어느 날부터인가 성인 남성을 두려워하고 소위 미쳐가기 시작한다. 아가씨를 모시던 그 집안의 근무자들은 어쩌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계급에서 아래에 위치한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묻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알리>는 끝내 알리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내 안에서 온갖 끔찍한 상상이 공포와 함께 퍼져나간다. 여성만이 이해할 수 있을 그 상상 속에 아마도 한 가닥의 진실이 있을 것이다.
<투계>를 읽으며 또다른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페르난다 멜초르의 <태풍의 계절>이 떠올랐다. 두 작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름끼치는, 그래서 자꾸만 책을 덮고 싶게 만드는 날것의 묘사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지나치다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누군가는 분명 이 단편들처럼 ‘투계’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현실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소설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믿는다. 나는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현실에 눈 뜨고 싶다. 우리가 <투계>를 통해 진정 깨달아야 할 건 무엇일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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