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복음의 능력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것은 케리그마가 아니었습니다. 그 설교에는 무조건 따라야 할 명령이라는 특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본질상 초대에 더 가까웠습니다. 설교자는 마가복음에서 아주 중요한말인 "즉시"를 빼버렸습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예수의 목적을 느끼게 해주는 말인데, 그 말을 빼버렸습니다.- P75
급진적 환대를 복음으로 제시하는 것의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케리그마 자체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런 결과가 만들어지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한 의도로 예수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급진적 환대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한다면, 글쎄요. 사실 급진적 환대를 약속하는 교회들은 마치 그런 환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약속함으로써 결국 언제나 자신을 파멸시키는 미덕의 범주를 암시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 우쭐해하는 곳에서는인간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정사와 권세가 늘 작동합니다.
따라서 정작 필요한 것은 급진적 ‘겸손‘입니다. -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