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2019-1-26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었다. 찾아보니 <고도를 기다리며>가 5년 먼저 출간되었네. 대령의 기다림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기다림보다 덜 무의미해 보이긴 하다. ‘무無의미’, 즉 ‘없음’의 상태에서 ‘덜’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데...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림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오래되어 제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기다리기라도 하지 않으먄 얘네들이 무엇을 하겠어...’ 했던 것 같다. 대령의 기다림은 다르다. 그의 기다림은 자존심을 넘어서 자기 존엄을 주장하는 행동이다. 수탉은 그 행위의 작은 깃발이고. 그야말로 ‘똥’을 먹더라도, 버릴 수 없는 자기의 가치. 인간이란 무엇을 먹느냐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은 괴상한 책크기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 소설은 짧은 중편 분량인데 소설 뒤에 거의 소설 분량만큼의 역자 해설과 작가의 자세한 연보를 붙여서 156면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애쓴다... 더 문제는 역자 해설이 너무나 졸문이라는 것이다. 내용보다 문장 자체가. 쓰기 싫어 억지로 쥐어짜낸 글 같다.
2026/5/17
어떤 서평을 보고 -집에 종이책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채 쌓여있는 책들 중에 있지 않다는 확신이 없어서- 굳이 전자책으로 다시 구매해서 읽다가 7년 전 메모를 찾아봤다. 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 자체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7년 전 고도를 떠올렸던 건 아마 고도를 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대신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대령의 ‘기다림‘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일이라기보다 노인이 청새치와 싸워 잡아서 배에 묶은 후 상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고기를 버리지 않고 항구로 귀환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 전에는 분명 대령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 약간의 비웃음이 있었고, 대령의 아내에게 공감했는데 지금은 대령의 옆에 서있고 싶다. 글쎄. 대령의 기다림은 삶 자체이고 그 의미를 긍정하는 행동이다. 삶의 결국은 무의미로 수렴하겠지만 결국으로 가는 과정은 그럴 수 없다.
덧) 역자 해설도 이번에는 읽을 만한데? 7년 전에는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싶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