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그 개와 혁명
meesum 2025/04/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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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개와 혁명
- 예소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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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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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몇 년 전 저작권 문제로 다소 소란스러웠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간접적) 여파로 올해부터 주관사와 책의 출판사가 바뀌고 표지도 살짝 바뀌고 책을 사 보니 구성도 바뀌었다. 아무 문제가 없이 20년 전과 똑같은 출판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고 책으로 묶어 냈다고 해도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면 책의 모습이 좀 변하는 것도 당연한데 마치 어제 읽었던 책이 오늘 바뀐 걸 손에 든 듯한 느낌이 잠깐 들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맨 앞에 실린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을 읽으면서 아, 소설도 20년 전과 달라졌구나 싶었다. MZ 페미니스트 딸이 ‘85민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뼈대로, MZ 페미니스트 세대가 ‘85민주‘ 세대를 평가하고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서 새로운 혁명의 방향을 보여준다. 시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85민주‘ 세대와 훨씬 가까운 나의 세대도 이제 지나간 시절의 일부로 역사에 한 발을 담갔구나 싶은 것을 이 한 편의 소설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어서 실려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평론은 ‘소설가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평론가는 20년 전과 똑같구나‘ 싶었다. 머릿속을 이론으로 가득 채워놓고 작품을 이론에 맞추는 건지 이론을 작품에 맞추는 건지 자기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평론이란 건 원래 그런 건지 문장은 왜 또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건지 어떤 문장은 몇 번을 읽어도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걸로 문해력 테스트를 하면 점수가 형편없겠는걸.
이어지는 우수상 수상작들은 충격이 덜 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와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단편소설이라면 이런 것이다‘라는 나의 막연한 감에 잘 들어 맞아서 그럭저럭 편안하게 읽었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도 형식을 그러했으나 나에게는 영 껄끄러운 퀴어가 소재로 전면에 드러나 있어서 조금 불편했고(사족을 달자면,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라 호오好惡, 즉 취향의 문제이므로. 그리고 이 ‘취향‘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가 불편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의 고민이 바로 나처럼 주장하는 사람 때문에 더 힘들고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과 최민우의 <구아나>는 산뜻하다. <구아나>에 삽입된 가상의 단편 애니메이션 ‘구아나‘는 어쩐지 살면서 어떤 국면에서 꺼내볼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유의 경구 뒤에 ‘구아나!‘라고 외치면 될 것 같다.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이 나는 가장 좋았다. ‘저도 일렉트릭 기타를 좋아합니다‘ 한 줄에 담긴, 소심한 우리들이 내주는 작은 마음의 연대. 작가와의 대담도 이 작가의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상은, 이 여섯 편 중에서라면 <그 개와 혁명>에게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대상‘ 씩이나 받으려면 어떤 튀는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그 개와 혁명>에 있다.
다 읽고 난 후 ‘지금, 이 시대의 소설‘과 소설이 그리는 ‘이 시대‘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 생겼다. 예전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상문학상 단편소설의 인물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을 것 같은, 그러니까 20년쯤 후에 읽어도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지금 이 시대와 너무 딱 달라 붙어있다(문지혁과 정기현의 소설은 예외). 그래서 30년 후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 읽으면 이 시대의 ‘세태기‘라는 감상뿐일지도 모르겠다. 바꿔 말하면 30년 후에는 이 소설집을 일종의 ‘역사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지혁의 소설이 다루는 계급의 문제는 언제든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기(같기?) 때문에,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섬세한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와는 결이 다르겠고.
아무튼 잘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이어서 읽고 싶게 하니까 좋은 책, 맞다.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찐 사족)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소설이 절반이다. 이런 건 왜 마음에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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